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유비 (문단 편집) == 특징 == 유비는 유씨 집성촌에서 자라났으며, 후에 익주 지방을 정복하여 약 50년간 지속된 촉의 건국자가 된다. 송대 이전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송나라, 특히나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밀려 내려간 남송 대에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천하를 빼앗긴" 존재로서 낭만화되어 수많은 민담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선주전>에는 노식 휘하에서 공부할 때부터 꾸준히 유비가 주변 호협들과 교류했으며, 그들이 유비에게 귀부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기주 중산국의 대상인인 [[장세평]]과 [[소쌍]]의 돈과 재물을 받아 더 많은 무리를 꾸릴 수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종합해보면 유비는 집성촌의 주먹패(혹은 [[부곡]]) 우두머리로서, 인근 상인들의 보호비를 받고 무리를 강화하며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유비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정부 측으로 참전하여 관직을 얻었으나, 관직 감찰관인 독우와 사사로운 만남을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매질하고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이후에도 유비는 군사행동으로 사소한 관직을 얻었다가 버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독우에게 사사로운 만남을 청하는 행동이나 임지를 버리는 행동 모두 상당한 불명예이며, 특히나 후자는 범죄였는데,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당시의 황제인 영제가 황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대사면령을 남발하였으므로 후에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초기 유비의 행보는 전형적인 주먹패 우두머리의 행보로서, [[고제(전한)|유방]]이 유협 집단을 이끌고 다니면서 세력을 키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방은 고향의 지역 관리 [[소하]]나 [[하후영]] 등과도 친분이 있었고 해당 지역 토박이로서 거병한 반면 초기의 유비는 [[관우]], [[장비]], [[간옹]] 등의 몇몇 측근들만을 대동하면서 몇 년간이나 고향을 떠나 천하를 떠돌았다. [[적벽대전]]과 이후 동오의 남군 정복으로 조조의 남진 기세가 박살나자, 유비는 촉으로 들어가 유장을 공격하고 익주를 차지했다. 이후 한중에서 승리하여 [[촉한]]을 건국했다. 자신과 한고조 유방을 동일시하여 한 황실의 부흥을 천명하고 [[황제]]로서 즉위하였다. 말년에는 [[이릉대전]]에서 대패하여 부족한 인재풀에 큰 치명상을 입혔다. [[명나라]] 시대 베스트셀러 역사소설이자 고전인 《[[삼국지통속연의]]》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다. 그 사후엔 그의 유지를 받든 [[제갈량]]이, 제갈량마저 죽은 이후엔 [[강유]]가 주인공을 이어받는다고 볼 수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총 120회인데 유비가 죽는 회차가 85회고, 이후 주인공 포지션을 물려받은 [[제갈량]]과 [[강유]]도 선제(先帝)의 유지를 이유로 북벌을 한 걸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삼국지연의]]》 전체의 [[진 주인공]]인 셈이다. 최후의 승자는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삼국지연의]]》의 이런 설정은 [[고제(전한)|한고조 유방]]과 유비를 최대한 동일시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데, 《연의》에서는 유비를 [[고제(전한)|유방]]과 거의 동일시함으로써, 그의 한중왕 선언이나 칭제에 큰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정사에서부터 스스로를 한고조의 현신 같은 이미지메이킹을 했는데, 이는 [[제갈량]]과 [[조식(삼국지)|조식]]의 논쟁으로도 알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소설 초반에 나오는 [[황건적]]에게 대항하는 의병을 조직한 뒤, 대장간에서 [[쌍검]]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삼국지》의 손가와 함께 현대까지 후손이 전해져 내려온다.[[http://weekly.donga.com/List/3/all/11/66340/1|#]] 공교롭게도 [[손권]]과 자기 부하였던 [[제갈량]]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무덤의 경우,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고 그나마도 도굴당한 조조, 무덤터가 남아있지만 무덤 자체의 행방이 묘연한 손권과 달리 온전히 무덤이 보존되었다. [[영제(후한)|영제]](유굉), [[후소제(후한)|소제]](유변), [[헌제]](유협), [[유우(삼국지)|유우]], [[유언(삼국지)|유언]], [[유장(삼국지)|유장]], [[유요]], [[유엽]], [[유표]] 등 후한 말 유씨 인물과 친척 관계가 되나, 엄밀히 말해 계승권과는 거리가 먼 유씨[* 한나라는 중간에 한번 망했다가 광무제가 재건했기 때문에 후한을 중건한 광무제의 후손들의 계승권이 우선되었는데 유비는 전한 초기에 이미 갈라진 방계 후손이다.]이며 유비의 족보 중간이 불분명해서 당시 황제들과는 정확한 촌수관계도 따지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