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럽연합 (문단 편집) == 역사 == ||<-2> 유럽연합의 주요 연표 || ||[[1948년]] ||[[베네룩스 3국]] [[관세동맹]] 체결. || ||[[1952년]] ||ECSC([[유럽 석탄철강공동체]])[* 간단히 말해서 독일 자르와 루르에 매장된 석탄과 프랑스 로렌의 철광을 우호적으로 공유하자는 제안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사실, 프랑스는 질이 좋은 석탄이 부족한 나라인 반면 독일은 고품위고 저품위고 간에 철광 자체가 없다시피한 나라라서 가능해진 것이지만, 20세기에 터진 대전쟁들이 아니었으면 실현 가능성도 극히 낮았을 것이다.][* 여기에 기여한 사람이 유럽 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모네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로서 민족주의자 성향의 드 골에 맞서 세계주의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했다. 후에 유럽 공동체 의장을 지냈다.] 창설. || ||[[1957년]] ||[[로마 조약]](유럽 경제 공동체(EEC) 설립을 위한 조약) 체결 || ||[[1958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 창설. 베네룩스 3개국과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가 기본 회원국. EURATOM([[유럽 원자력 공동체]]) 창설. || ||[[1967년]] ||EEC를 EC(유럽 공동체)로 개편. EEC와 EURATOM, ECSC를 하나로 통합.|| ||1968년 ||[[관세동맹]] 완성.||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 EC 가입. 회원국 총 9개국.[* [[노르웨이]]는 가입협상을 마무리하고 의회에서도 승인했으나, 어업 쿼터 제한 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최종 가입 비준이 [[국민투표]]로 부결되었다.] || ||1981년 ||[[그리스]] EC 가입. 회원국 총 10개국. || ||1985년 ||덴마크 중 [[그린란드]] 탈퇴. [[솅겐조약]] 조인. || ||1986년 ||[[스페인]](에스파냐), [[포르투갈]] EC 가입. 회원국 총 12개국. 단일시장과 경제통화동맹(EMU), 가중다수결제에 대한 단일유럽의정서(Single European Act) 서명. || ||[[1990년]] ||[[독일 재통일]]로 옛 [[동독]]이 EC 편입. 회원국 총 12개국. || ||[[1992년]] 2월 ||[[마스트리히트 조약]] 조인. || ||[[1993년]] 1월 1일 ||유럽 단일시장 완성. || ||[[1993년]] 11월 ||마스트리히트 조약 발효. '''본격적으로 EU 출범.''' 여기서부터 [[완전경제통합]] 단계에 접어들었다. || ||[[1995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EU 가입. 회원국 총 15개국[* ~~[[북해]]에 [[유전]] 잭팟이 터져 살만해진~~ 노르웨이 또한 같이 가입하려 했지만 두번째 시도 역시 [[국민투표]]로 부결되고 이후로도 유럽연합 가입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 ||[[1996년]] ||유럽연합 신규 회원국들의 가입 조건인 코펜하겐 영역 (Copenhagen Criteria)을 만듦. || ||[[1997년]] 10월 ||암스테르담 조약 조인. || ||[[1999년]] 1월 ||EU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 공동외교안보정책(CFSP[*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실시 합의. || ||[[1999년]] 5월 ||암스테르담 조약 발효. || ||[[2001년]] ||니스 조약 조인. || ||[[2003년]] ||니스 조약 발효. || ||[[2004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몰타, 키프로스(남키프로스) 등 EU 가입. 회원국 총 25개국. || ||[[2007년]] ||루마니아, 불가리아 EU 가입. 회원국 총 27개국. 이 해를 기해 EU국가들 간의 국경선, 노동시장, 기타 시장들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 ||[[2009년]] 11월 ||[[리스본]] 조약 체제 출범. || ||[[2011년]] [[1월 1일]] ||[[에스토니아]] 유로화 사용 시작. || ||[[2012년]] [[10월 12일]] ||유럽연합 [[노벨평화상]] 수상. || ||[[2013년]] [[7월 1일]] ||[[크로아티아]] EU 가입. 회원국 총 28개국. || ||[[2016년]] [[6월 24일]] ||[[영국]] [[브렉시트|국민투표에서 EU 탈퇴 가결.]] || ||[[2017년]] [[3월 29일]] ||[[영국]], 유럽연합 탈퇴를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 ||[[2020년]] [[1월 31일]] ||[[영국]], 유럽연합 최종 탈퇴. 회원국 총 27개국.||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나친 민족주의는 유럽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이념 아래에 서유럽의 중추적인 국가들은 과거를 정리하고 협력과 통합을 통한 평화를 쟁취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참석한 헤이그 회의(1948)는 유럽 결합을 지향하는 유럽 국제 운동과 유럽 대학을 설립하여 미래의 유럽 지도자들이 같이 공부하고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유럽 연합의 첫 단추로 여겨진다. 1952년에는 파리 조약(1951)을 통해 공업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탄생하면서 유럽 연방의 첫 발을 디딘다. 이렇게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이탈리아는 유럽 통합을 위해 노력했고 유럽만을 위한 국제 협력 기구를 세웠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이들 중 유럽 통합에 가장 이바지한 [[알치데 데 가스페리|데 가스페리]][* 이탈리아 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전후 이탈리아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해 이탈리아를 재건하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장 모네[* 프랑스 외교관으로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재건과 현대화에 기여했으며, 1950년 "쉬망 선언"을 추진해 유럽 통합을 촉진시켰다.], 로베르 쉬망[* [[제2차 세계 대전|2차 세계 대전]] 중에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당했던 프랑스 정치인으로 "유럽 합중국"을 목표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를 추진하여 유럽 통합에 크게 이바지했다.], 폴 스파크[* [[벨기에]]의 정치가로 [[베네룩스 3국]] [[관세동맹]]과 유럽 경제공동체를 설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4명을 가리켜 유럽 연합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이런 유럽합중국의 이상은 적어도 그런 연합체가 생기면서 유럽 연합체 내부에서의 전쟁은 안하게 되었다는 공로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유럽연합이 아무리 비판받아도 이 시도의 의미는 충분히 있는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분담금이나 유로화 지원, 인재 흡수 같은 형태로 상부상조하며 유럽 각국의 공존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럽연합의 이상을 유로주의자들이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reaty of rome.jpg|width=100%]]}}} || ||1957년 3월 25일 로마 조약이 체결되면서 유럽 연합의 전신인 유럽 경제 공동체(ECC)가 탄생하게 된다. 이 조약으로 관세 동맹이 도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가 설립되어 회원국의 농산업과 교통을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 그리고 마침내 1957년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서독은 로마 조약에 서명하여 유럽 경제 공동체를 세우고 관세 동맹을 맺었다. 비록 1960년 대에 프랑스에서 초국가적인 권력의 탄생을 경계하여 유럽 통합에 차질이 생겼으나, 1967년 합병조약을 체결하여 유럽 의회,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유럽 이사회를 탄생시키고, 기존에 있던 유럽 경제공동체, 유럽 원자력 공동체, 그리고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를 통합시켰다. 1973년에는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가입하면서 유럽 공동체가 처음으로 확장에 성공했다. 이때 노르웨이도 가입하려고 시도했으나 국민투표 부결로 가입이 무산됐다. 그리스는 1981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986년에 가입했다. 1990년 동독이 서독과 통일을 이루면서 자동으로 유럽 공동체에 편입됐다. 1985년에는 [[솅겐 조약]]이 체결되면서 각 회원국 간의 출입국 통제가 사라져 이동이 더 자유로워졌고, 1986년에는 유럽기가 만들어져 회원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단일 유럽 의정서가 체결되어 유럽 공동체에서 유럽 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그러나 1993년,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이 무너져 유럽 공동체에 가입을 원하는 국가들이 늘어나자, 유럽 공동체 지도자들은 위기를 느끼고 최대한 순조롭게 공동체를 확장할 수 있게 "코펜하겐 기준"을 도입했다. 즉, 향후 유럽 공동체에 가입을 원하는 국가는 코펜하겐 기준에 명시된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정식적으로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유럽 공동체는 커지면 커질수록 회원국 간의 불협화음이 커져만 갔다. 그러나 1993년 11월 1일,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발효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연합이 출범했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의거하여 유럽 연합은 유럽 공동체를 넘어서 사법 권력(Police and Judicial Co-operation in Criminal Matters)과 일부 외교.안보 권한(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을 회원국들로부터 위임받았다. 또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아래 초기의 [[유로]]가 도입됐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때부터 유럽 연합은 [[공동시장]]을 넘어서 [[완전경제통합]] 단계에 도달했다고 분석한다. 1995년에는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가 가입했다. 1995년 12월 1일 새로 도입된 화폐 이름을 "유로"라고 결정했고, 1999년에 회계 통화로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1일, 유로 화폐가 시장 전체에 공급되기 시작해서, 같은 해 5월에는 회원국들의 기존 화폐를 완전히 교체했다. 2004년에는 헝가리, 키프로스, 체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역사상 가장 큰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2007년에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가입했다. 2007년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몰타, 키프로스,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가 차례대로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기존 12개의 회원국에서 19개로 확장됐다. 2009년 12월 1일,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서 유럽 연합에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기구로 자리잡는다. 특히, 유럽 연합의 세 기둥을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시켰고,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에 위원장을 설치해 회원국의 영향으로부터 좀더 독립시켰으며, EU 수석 외교관(High Representative of the Union for Foreign Affairs and Security Policy)의 권한을 확대시켜 유럽 연합이 전체적으로 외교와 안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2년 노르웨이 현지시각으로 10월 12일, [[노르웨이]]의 공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2012년 노벨평화상의 수상은 유럽 연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벨위원회와 노르웨이 주재 EU 대사는 노코멘트로 일관했지만 곧 노벨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유럽 연합을 2012년 노벨평화상 수상단체로 선정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고대부터 치열하게 전쟁을 벌여온 유럽에서 EEC가 1958년 출범한 이후 단 한 차례도 가맹국들 간의 전쟁이 없었고 과거의 적국이었던 나라들과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여 유럽에 전화의 불길을 사그라들게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EU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유럽 연합의 각국 정상들도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수상할 만했다는 반응이다. 유럽회의주의자인 프랑스의 마린 르펜이나 영국의 나이젤 패라지는 "유럽 연합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맹비난을 했다. 주로 유로화 사태를 예시로 들면서 비난했으나, 유로화 사태는 해당 국가들의 실책으로 터진 것으로 굳이 유로존에 묶이지 않았어도 터졌을 상황이다. 과거 노벨상을 수상했던 데스몬드 투투, 메어리드 코리건, 페레스 에스키벨은 유럽 연합은 평화롭게 문제를 풀기보다는 무력을 행사해서 풀었다고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