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럽사 (문단 편집) ==== [[중세]]의 끝 ==== * [[중세 흑사병]](1350) * [[백년전쟁]] (1337 ~ 1453)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동로마 제국]]의 멸망 (1453) 백년전쟁은 당사국인 [[영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에게 중세 [[봉건시대]]의 종언과 [[절대왕정]]의 시작을 알리는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세기 초엽까지 가는 오랜 라이벌 대결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우연히도 같은 1453년에 동쪽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역사|오스만 베이국]]에게 함락당하면서, [[1453년]]은 중세와 근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은 최전성기를 누리며, 유럽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헝가리 왕국]],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의 [[후녀디 야노시|군]][[블라드 가시공|주]][[슈테판 3세|들이]] 최선을 다 했으나, 결국 [[헝가리 왕국]]은 [[모하치 전투]](1526) 이후, 나라가 분열되고, [[왈라키아 공국]](1522)과 [[몰다비아 공국]](1476)은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이 된다. '''[[흑사병]](1350) 때문에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거리에는 웬 사람들이 죄를 씻자고 [[채찍]]질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폭도로 돌변해 마을을 약탈하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100년 동안 [[백년전쟁|전쟁 삼매경]](1337 ~ 1453)'''에 빠져 있고, 교황들은 서로 싸워대니 못 믿겠다는 사람들만 남고, 농민들도 못 살겠다고 봉기하고, 저 멀리 동쪽에서는 '''[[오스만 제국|오스만]]이라는 이교도가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콘스탄티노폴리스를 넘어]](1453) 유럽으로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엄밀히는 견고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서편의 발칸부터가 14세기에 대부분 정복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