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라시아주의 (문단 편집) == 고전적 유라시아주의 == 유라시아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은 20세기에 2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시작되었으며, 이를 좌익 유라시아주의와 우익 유라시아주의로 구분한다. 다만 유라시아를 제패했던 현실사회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유라시아주의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결국 [[마르크스주의]]자이기에 제3차 [[코민테른]] 당 대회에서도 밝히듯 국가의 완전한 철폐를 목적으로 한 전 국가의 민족자결적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기에 약간만 비틀면[* 일례로 후술할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의 인종차별 철폐 주장을 비틀면 여러 민족이 함께 살되 섞여서는 안된다는 민족다원주의적 논리나 "러시아에 살면 모두 러시아인" 하는 식으로 타 민족의 민족성을 부정하는 논리를 만들 수 있었다. 어찌됐건 [[내셔널리즘|민족주의]]적 요소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 [[러시아 제국주의]] 또는 (신유라시아주의의) [[파시즘]]적 행태가 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작은 결국 백계 러시아인의 사상이었던 유라시아주의는 좌익 유라시아주의와 우익 유라시아주의를 막론하고 반동이나 파시스트 첩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었다. 좌익 유라시아주의의 창시자 미르스키 또한 [[영국 공산당]]에 입당한 후 다시 소련으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막심 고리키]]가 그의 귀환을 도왔다고 한다.] 간첩 협의로 체포되어 노동수용소에서 노동하다가 사망하였다.[* 여담이지만 미르스키가 소련으로 돌아갈 때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에 "그는 총에 맞을 것이다" 라고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독소전쟁|대조국전쟁]]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가 국가를 단결시키고 전쟁에 사용함에 있어 상당히 유용함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민족주의적 선전을 이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죽었던 유라시아주의, 특히 좌익 유라시아주의가 다시금 태동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부의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개방 정책]]에 따라 [[다당제]]가 들어서며 고전적 유라시아주의가 21세기까지 존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