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도훈 (문단 편집) === 전자랜드-대구 한국가스공사 시절 === 애당초 진짜 건강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였기 때문에 야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5개월만에 KBL 기술위원으로 컴백하더니, 2009-10 시즌부터 전자랜드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것. 그리고 이 시즌 [[박종천(1960)|박종천]] 체제의 전자랜드가 개그랜드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12경기에서 1승 11패를 기록하며 10연패에 빠지자 감독은 경질되고, 수석코치였던 유도훈이 대행 신분으로 잔여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잠시 삼성이 8연패하는 틈을 타 6강을 바라봤지만 시즌 초반 부진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막판 12연패를 기록하며 하위권에 머무르며 시즌을 마쳤다. 참고로 이 시즌은 10연패를 2번 이상 하고도 7, 8위와는 1경기차, 10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와 승률은 같았으나 상대전적 4승 2패 우세로 9위로 마무리했다. [[2010년]] [[4월 1일]]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며, 전자랜드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감독 승격으로 전자랜드의 지휘봉을 잡은 후 맞은 첫 시즌인 2010-11 시즌, [[문태종]]의 영입을 기점으로 조직력을 정비하면서 돌풍을 이끌었다. 전자랜드를 창단 후 최고 성적인 정규시즌 2위로 올려놓으면서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았다. PO에서 KCC에게 패하면서 창단 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한 시즌 만에 전자랜드의 개혁에 성공했다는 점으로 유도훈의 능력은 재평가받았다. 2011-12 시즌에서는 6라운드 2승 7패 부진으로 비록 5할 승률에는 미치지 못한 26승 28패를 기록했지만, 다시 PO로 이끌면서 6강에서 [[부산 kt 소닉붐]]과 치열한 명승부를 치르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거의 다 잡았던 5차전에서 승리를 결정짓지 못하고 2차 연장 끝에 패한 것이 아쉬웠던 대목. 2012-13 시즌에 구단의 매각설에 휘말리며 암울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정규시즌 3위, 4강 PO에 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2012-13 시즌 종료 후 전자랜드와 '''4년''' 재계약에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610559|합의했다]]. 모기업의 구단 매각설에 시달리며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했던 것에 대해 걱정했던 팬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 2013-14 시즌에는 팀의 주포였던 [[문태종]]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고 [[강혁(농구)|강혁]]이 은퇴하면서 6강 PO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개편하고 용병인 [[리카르도 포웰]]에게 주장 자리를 맡기면서 4위로 다시 한번 6강 PO에 진출했다. 이로써 본인은 부임 이후 4시즌 연속 6강 PO 진출이라는 대업을 일구어냈다. 2014-15 시즌에는 역대 감독 9번째로 '''200승'''을 달성했다. 초반 9연패를 딛고 6강 경쟁을 이어갔는데, 6라운드에 2승 7패에 막판 4연패로 부진하여 5할 승률에 실패했지만, 비교적 여유있게 6위를 확정지었고, 6강 PO에서 [[서울 SK 나이츠]]를 단 1경기도 내주지 않고 3:0으로 업셋하면서 4강 PO에 진출하였으며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프로미]]에 막히긴 했으나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여담으로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 팬들이 구단 역사상 '''[[유재학|유이하게]] 정상적인 감독'''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로 전자랜드 팬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은 몇 안되는 감독이다. --이 팀을 거쳤던 [[박수교|전임]] [[박종천(1960)|감독들]]이 워낙 무능했던 탓도 있었지만-- [* 그나마 [[최희암]]은 감독 생활 말년에 팀을 5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통산 승률도 전자랜드에서는 162경기 81승 81패. 이후 고려용접봉 중국 다롄 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2015-16 시즌에는 개막 4연승을 까먹고 매 라운드 2승 7패로 부진하여 최하위까지 쳐지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어 [[리카르도 포웰|포웰]]빨이라고 욕먹고 있는데 특히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 등에서는 '''"돌도훈"'''으로 조롱하며 비난의 화살을 꽂고 있는 모양. 그래도 6라운드 막판 4연승까지 질주하며 탈꼴찌를 노렸지만 마지막 2경기를 내리 패하며 결국 17승 37패로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최하위를 겪고 말았다. 2016-17 시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박찬희(농구)|포인트 가드]] 영입, 메인용병 새 얼굴 영입, 특급신인 [[강상재]]를 지명했지만 선수 구성이 바뀌었는데도 전술에는 변화가 조금밖에 없는데다가 풍부한 포워드진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장신 포워드를 먹어도 쓰지를 못하니!~~ 결국 가드 중심의 양궁농구 혹은 용병 몰빵농구만 추구하며 4쿼터만 되면 개그랜드가 발동하는 등 기대 이하의 모습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서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물론 [[박성진(농구)|박성진]] 기용을 최대한 줄이고 지난 시즌들에 비해 선수들에게 작전이나 패턴의 자유도를 높인건 맞지만... 그래도 결국엔 반복되는 공격 패턴이 읽히고 있고 계속해서 부족한 공격 전술이 발목을 잡고있는게 사실이다.[* 이 점은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T&G 카이츠]] 감독 시절에도 자주 지적된 부분. 플랜 A가 엉키면 플랜 B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패배를 하는 형태의 경기가 자주 있었으며, 이 시기 안양의 공통점도 패턴이 단조롭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것이 발목을 잡아서 2007-08 시즌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프로미]]에게 4강 플레이오프에서 완패. 다만 이 시기 안양 KT&G에서 이걸로 확실히 재미를 본 가장 큰 이유는 이 팀에 [[양희종]]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특급 블루워커가 있었으며 용병으로는 [[마퀸 챈들러]]-T.J 커밍스 콤비가 건재했고, [[포인트 가드]]가 전성기의 [[주희정]]이었던지라...] 그나마 강상재를 어떻게 쓰는지 좀 아는 거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만, 어찌되었든 올 시즌에 4강 플레이오프 이상의 큰 성적을 내지 못하면 재계약 가능성이 요원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전랜 마갤은 언제나 항상 재계약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 2월 초 들어서 침체에 빠지며 6강 탈락 위기에 놓였지만, 경쟁자 SK는 초반에 까먹은 승수 때문에, LG는 2월 24일 [[김영환(농구)|김영환]]에게 당한 충격적인 버저비터 패배를 기점으로 자멸하는 사이 승수를 쌓으면서 일단은 플옵 막차인 공동 5위, 동부와의 상대전적 열세로 6위로 6강 및 봄의 잔치에 2년 만에 초청 받았다. 상대전적 1승 5패 절대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전을 패배하고도 2, 3차전을 이겼으나 끝내 삼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바람에 2승 3패로 전자랜드의 봄 농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시즌 후 전자랜드와 재계약을 했다. 그런데 2020~2021시즌을 끝으로 전자랜드 구단 측에서 농구단 운영을 접기로 함에 따라 전자랜드라는 이름으로 감독생활은 대행시절 포함 12년으로 끝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