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도훈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 선수 시절에는 키가 농구선수 중엔 굉장히 단신인 173cm로 정말 작았지만 [[송태섭|빠른 스피드 및 날렵하고 뛰어난 드리블 실력과]] 리더십으로 용산고의 우승을 이끌면서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진학 후에는 한동안 [[중앙대학교|중앙대]]의 그늘에 가려있던 연세대의 정상 탈환에 기여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패싱 센스와 슛이 좋은 편에 리더십을 갖췄고,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라 능력을 인정받은 선수. 다만 키가 작은 것이 늘 한계가 되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로 스카우트되어서 실업 선수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는데, 주전 가드로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유도훈이 입단할 당시 농구대잔치의 패권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에게 있었고, 기아의 패권을 끝낸 것은 그의 모교였던 연세대였지 현대전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도훈은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어쨌든 중간에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할 때를 빼고는 주전으로서 활약하다가 1997년에 [[이상민(농구)|이상민]]이 들어오면서 주전 자리를 내주고,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대전현대시절의 유도훈.jpg|width=100%]]}}}|| 프로 원년에는 [[이상민(농구)|이상민]], [[조성원]]이 군 복무 중이었고, [[추승균]]이 입단하기 전이라서 주전 포인트 가드로 뛰면서 활약했지만, 아무래도 현대의 약한 전력을 커버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1997-98 시즌부터 [[이상민(농구)|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이 들어오고,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의 활약이 겹치면서 현대는 일약 우승권으로 도약했다. 유도훈은 식스맨으로 벤치에서 이상민을 보좌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한 축을 맡았다. 그러나 [[1999-2000 KBL 챔피언결정전|1999-2000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울 SK 나이츠|청주 SK]]에게 패한 것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