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니(가수) (문단 편집) ==== 유족(어머니)의 유니 회고 인터뷰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https://web.archive.org/web/20150210163109/http://danmee.chosun.com/wdata/html/news/200703/20070323000018.html|원문]] ] [ '''연예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어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예인 생리를 자세히 모르는 거죠. 다른 부모들에게 연예인 하려는 자식들을 절대 만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연예활동을 시작해서 힘든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활동을 시작했으면 좀 나았을 것 같아요.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상처받을 일도 많았겠지요. 고등학교 1학년(1997년) 때 영화 ‘세븐틴’ 작업을 끝내고 나서 많이 힘들었는지 활동하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쉬었어요. 그래도 연예인들은 타고난 끼가 있는지 시간이 지나고 다시 활동했지만요. '''특별히 연기자에서 가수로 변신한 이유가 있었나?''' 냉정하게 탤런트로는 성공하지 못했고, 영화는 너무 성인 역할이 들어와서 내가 막았어요. 가수는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막지 않았어요. 그렇게 가수로 데뷔했는데, 데뷔 초기에는 무대가 안방보다 편하다면서 좋아했어요. '''성격은 어땠나?''' 원래는 쾌활했어요. 무엇이든 적극적이었죠. 학창시절에는 반장이나 [[학생회장]], 응원단장 같은 걸 도맡아 했죠. 방송활동도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오디션 보고 시작했을 정도니까요. 연예활동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내성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일이 끝나면 집에 곧바로 돌아오고, 쉬는 날에도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큰 돈을 벌지 못하는 것도 딸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을까?''' 혜련이는 어려서부터 풍족하게 살았어요. 돈에 대한 가치를 몰랐죠. 어려서부터 비싼 옷을 입고, 등하교 길에는 자가용으로 배웅해주고, 공주마마 모시듯 키웠어요. 내가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어려운 게 뭔지 모르고 자랐는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면서 방송국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연예계에 있으면서 많이 배웠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따님이 말은 안 해도 경제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랬을 겁니다. 예전에는 명품을 사 입혀도 그게 얼마짜리인지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따지기 시작했나 보더라고요. 주변 친구들이 “유니 짜졌다”는 소리를 많이 했나 봐요. '''따님이 달라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참 밝고 명랑하고 애교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당시엔 성인이 돼서 조신해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병이 오기 시작한 거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어서 완전히 무기력해진 것은 2년 전(2005년)부터예요. 특히 2집 활동 끝나고 집에서 보낸 1년 동안 말이 거의 없었어요. 가족이 안 것은 1년 전(2006년)이고, 본인이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1년 전이었더라고요. '''[[정신과]] 치료를 받는지는 어떻게 알았나?''' 항우울제가 굉장히 독해요. 신경을 마비시키는지 방금 전 일도 기억을 잘 못해요. 손도 떨고요.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항우울제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유니의 스케줄북에 정신과라고 적혀 있었어요. '''매일 약을 먹었나?'''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워낙 반대하니까 몰래 먹는 것 같았어요. 항우울제는 뇌신경을 죽이는 것 같아요. 애가 깜박깜박 잊곤 했죠. 하루는 본인도 너무 힘이 드니까 “돌아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수면제에 의존하다가 나중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항우울제도 복용했어요.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한번 잠을 자면 며칠이고 자고, 한번 깨어 있으면 며칠이고 잠을 자지 않았어요. 생활리듬이 뒤죽박죽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약을 못 먹게 한 거죠. 그렇게 “운동 좀 하라”고 해도, 귀찮다며 절대 나가지 않았어요.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라고 해도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옵니다. '''상황이 그 정도면 치료에 매진해야 했을 것 같은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큰 병원에 가서 정신과 치료에 매진했어야 했는데, 우울증의 심각성을 몰랐어요. 요즘은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왜 그렇게 우울증 관련 기사가 눈에 잘 들어오는지…. 우울증을 치료했던 분들 만나보니까 당시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감기를 걸려도 병원에 가는데, 왜 병원에 가서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면 뭐 합니까? '''대체로 우울증을 앓게 된 원인을 인터넷 댓글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가?''' 네티즌들이 심합니다. 저도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딸 아이 기사 밑에 적힌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딸아이를 혼냈죠. 밖에서 어떻게 하기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느냐고. 그런데 오히려 딸아이가 담담하게 “그 사람들은 원래 그래. 엄마, 인터넷 보지 마, 상처받아”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도 그런데 당사자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많이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성형한 것이 아니에요. [[경희대학교|경희대]] 1학년 때 학교에서 축구공을 맞은 후로 코 안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재수술을 해도 계속 염증(구축)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계속 일이 꼬였어요. 네티즌들이 그 일(코 성형)을 두고 말이 많아서 힘들어했어요. '''함께 고민을 나눌 친구는 없었나?''' 없었어요. 정말 외로워했는데 주변에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었죠. 나에게는 모든 걸 말할 수도 없었을 테고요. '''3집 앨범이 나왔는데, 들어봤는가?''' 몇 분 듣다가 그만뒀습니다. 못 듣겠어요. '''요 몇 달 사이 달라진 게 있었는가?''' 갑자기 TV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봤어요. '''다시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딸의 심정이 어땠을까?''' 올라가봐야 무엇 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본인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었어요.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으니 후회 없이 활동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예계 싫으면 이모가 있는 미국에 가라는 말도 해줬어요. '''성공에 대한 조급증도 생겼을 것 같다.''' 가수 활동을 시작하고 자기가 노력한 만큼 무엇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실망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가 ‘한걸음씩 한걸음씩 가야 한다’는 구절이 있는 찬송가를 부르면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한걸음씩 언제 가느냐,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이거냐?”라면서요. 삶에 회의가 왔던 것 같아요. '''우울증을 앓게 된 원인이 다른 데에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가?''' 본인의 성격일 수도 있고,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어요.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형제가 없으니 강하게 자라야 한다며 엄하게 키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도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지만, 가장 큰 가해자는 나다”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렇게 활달하던 아이가 조용해지면 그게 비정상적인 상황인데, 왜 그걸 눈치 채지 못했을까?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