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 (문단 편집) === 진과 분서갱유 === [[전국시대]] 이후 유가는 당시 유력하게 대두되던 [[법가]]와 충돌했다. [[전국시대]]에는 기존에 유가가 숭상하던 주의 질서가 한껏 파괴되고, 주의 질서에 의거한 신분제가 하극상에 의해 나날이 뒤집어지며, 한편으로 [[법가]]의 변법(變法)에 의해 새로운 제도가 들어섰다. 변법의 여러 내용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봉건제에서 군현제로의 전환'이다. 이는 제후, 경, 대부 등의 중간 권력 계층이 사라지고 일원적 권력의 전국 직할 통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법가]]는 세습적 봉건 제후들을 완전히 소거시키고, 그 자리에 철저히 법(法)에 의거해 국가 행정을 처리할 일종의 행정 관료를 채워 넣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결과 신권은 하락하고 군권은 급속히 상승한다. [[중국]]은 이를 통해 제국의 시대로 나아가지만, 지식인 계층의 역할을 강조하던 유가 입장에서 이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이자 완전한 군현제 국가를 이룩한 법가 제국 [[진(통일왕조)]]의 시대에 유학자들과 법가 국가가 [[분서갱유]]라는 충돌을 낳게 된 것은 [[진시황]] 개인의 폭정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필연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격한 제국 질서의 구축과 광대해진 영토로 인한 법가 통치의 비효율[* 법가 통치는 철저히 중앙의 일원적 질서(이는 법으로 나타난다)에 의거한 전국의 직할 통치가 이루어져야 실행할 수 있는 체계다. 이를 위해 진시황이 전국에 도로를 깔고 수레의 바퀴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했던 것이다. 하지만 광대해진 제국의 영토는 자연히 지방과 중앙의 연결을 약화시키면서 법가의 통치 효율을 떨어뜨렸다.]로 인해 진은 멸망하고, [[전한]]이 들어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