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 (문단 편집) === 인문화의 역사 ===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라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격신, 영원불멸한 사후세계를 가리키는 것인데, 물론 이는 종교를 정의하는데 있어 하나의 단선적인 기준일 뿐이고 실제 종교라는 것이 갖는 스펙트럼은 생각 이상으로 넓다. 긴말할 것 없이 [[사이언톨로지]] 같은 것도 종교 취급되는 현실을 상기해보자. 어쨌든 중기 이후의 유교는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천(天)이나 혼 따위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언급하는 편인데 이는 유교의 제사 예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천주교]]의 관점에서 제사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논어의 신종추원(愼終追遠)이라는 표현에서도 이미 언급되는 말이다. 죽은 자의 영혼에게 기(氣)를 북돋아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원래 유교의 제사는 4대만 하게 되어있다. 즉 4대가 지나면 혼이 흩어져 없어진다는 것이라 그럴 이유도 없다. 조선말기에 [[천주교]]가 전파됐을 때 유학자들이 천주교를 반대한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불교]]처럼 천당과 지옥([[괴력난신]])을 말하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일정량 길흉에 관계된다는 신앙적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기 조상을 잘 모시냐 안 모시냐의 문제였다. 제사를 제대로 안 지낸다는 건 부모님을 내팽겨치는 불효막심한 놈이 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유교는 길흉화복을 비는 종교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다. 그보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불효자로 낙인 찍는 사회적 규약을 지탱하던 이론이었고, 이러한 면에서 윤리 수칙을 강제하는 종교적 측면이 있었다. 논어에 역(易)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물론 기본적으로는 점술(占術)을 의미하지만, 사실 오늘날 주역을 살펴봐도 알 수 있지만, 주역의 핵심은 점술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易)에 대한 논리다. 역이라는 문헌 자체가 점술로 출발해서 철학적 내용이 점점 증보된 책이다. 하지만 역(易)의 경우도 본질은 은나라 이전의 점복(占卜)에 두고 있으며, 이후 시대에서도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었지만 역경의 사용 목적 중 하나가 점복술인 것은 분명하다. 조선에서 성리학이 불교를 배척했던 것은 불교가 나중에 전파된 기독교처럼 외래 종교였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유교도 외국인 중국이 기원이나,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외국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중국을 외국이라고 보지 않았다.] 즉 성리학은 외래 종교를 타파하고 중국 고유의 종교를 되살리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성리학 이후에도 양명학이 등장했기 때문에 성리학이 곧 유교라고 할 수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