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 (문단 편집) == 종교? 철학? == '''"유교를 [[종교]]로 보아야 하는가? [[철학]]으로 보아야 하는가?"하는 논란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종교]]와 [[철학]]의 정의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종교'와 '철학'이라는 틀은 서양인들 특유의 [[헤브라이즘]]([[그리스도교]])과 [[헬레니즘]](그리스 철학)의 분리에서 기인한 것이며 이러한 분리는 서양 이외의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양의 철학도 그 기원은 종교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서양에서도 종교와 철학은 분리가 안 된다. 예를 들어 서양 철학의 근원에 해당하는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종교뿐만 아니라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은 바,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형이상학적 아이디어가 피어날 수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예 제1원인(순수형상)을 신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플라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신을 부정하고 하늘과 땅 속을 탐구했다'는 죄목으로 [[아테네]]의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은 끝에 '''처형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종교([[그리스 신화]])을 의식함이 당연하였기 때문에, 따라서 [[제우스]]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브라함 계열 신의 개념 및 느낌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정도로 파악함이 옳다.[* 실제로 플라톤의 작품을 보면 현대로 따지면 '신의 이름에 걸고', 'oh my god' 같은 느낌의 감탄사가 자주 언급 된다.] [[불교]]는 워낙 다양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윤회]]라고 하는 사후세계를 중시하고 [[아미타불]]이나 [[미륵불]]처럼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언급이 된다. [[도교]]도 사원과 성직자가 있고 헌금도 받는다. 부적 만들어서 파는 것의 원조가 도교다. [[힌두교]]의 경우도 '인도철학사를 보면 인도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서론에서부터 언급하고 있다.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인도철학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하나의 본체적 원리([[브라흐만]])를 말하는데, 이 원리는 동아시아-특히 도가사상의 도(道)와 같은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는 본체/현상의 이원론 자체가 없다. 특히 유교에서 언급되는 도는 그냥 상식적인 삶의 원리 같은 것이지 우주를 아우르는 대단한 원리 같은 게 아니다. 종교를 시공간을 초월하는 생각이라고 정의내린다면 유교는 당연히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이데아나 물자체 같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개념들을 자주 운운하는 서양철학마저 종교로 분류할 수 있다. 유교의 이념은 인의예지를 기준에 두며, 이 기본 이념으로 사람답게 만든다. 즉, 종교의 의미와 목적은 사람이 사랍답게 살기위한 방법을 가르치고 그 목적은 신으로 내가 믿는 대상의 말씀대로 살기 위함이다.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를 따지려면 종교를 어떻게 정의할 건지부터 명확히 해야 되는데 그것부터가 애매하다. 서양철학자 중에도 그리스도인이 많았고 과학자 중에도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그렇다고 철학과 과학을 [[그리스도교]]와 섞어서 생각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와 철학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려는 문제가 애초에 성립이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철학사는 신앙에서 시작했으며, 종교학은 철학적 방법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을 분리한다는 것은 "철학은 종교적이지 않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말인데, 막상 유교의 경전들을 보면 종교적 성향을 근대서양사상처럼 거부하려고 애쓰지 않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와 근대사상이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지만 동양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고 보아서, 유교를 종교로 판단할 수도 있다. 더구나 불교를 통해 신비철학을 흠뻑 받아들여 본래의 유교에서 일신한 것이 성리학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을 종교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항들이 다시 제기된다. 서양 근대 사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 종교였고 이에 대한 거부반응이 종교와 철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들이었을텐데, 이렇게 보면, 유학도 불교에 대한 일련의 거부 반응이 있었다. 조선 유학을 노정한 자인 정도전의 [[불씨잡변]]과 같은 책을 비롯하여, 조선조 내내 이루어진 [[숭유억불]] 정책도 어찌보면, 종교적 성향과 거리를 두려는 유학의 거부반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리학이 불교를 흡수하여 이루어진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흐름의 핵심에 있었던 성리학자들도 불교에 대해서는 내내 적극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피타고리안 종단, 오르페우스 밀교단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여 그를 종교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유학, 특히 성리학에 대해서도 핵심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동국통감]]을 비롯해 [[삼국사기]]는 유학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서다. 정작 삼국사기에선 "또한 당나라 군사의 신령한 힘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그 지역을 취하여 군현으로 만들었으니, 가히 성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당나라 군사가 신령한 힘인지도 의문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철학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게 된다. [[견훤]]의 평에서는 "천도(天道)는 되돌려주기를 좋아합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철학적인지 종교적인지는 논란적이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는 우리가 아는 것대로 저 구절을 붙일 필요가 없이 부자유친이 깨져 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말이 종교적인 면도 강하지만 어쨌건 현실적인 면이 아예 없다고 보기도 좀 그렇다. 천도라는 관념적인 존재를 끌어다 댔지만 어쨌건 인심 잃을 짓을 하면 지금은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서양 정치철학에서도 저런 얘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 정도가 종교적인 발언이라고 한다면 서양철학자들도 저 정도 얘기는 했던 사람들 많다. 현대 철학자들은 아니지만.] 신령한 힘을 빌었다는 말도 이후 동국통감에서는 당나라의 위엄을 빌렸다는 말로 바꾸게 된다. 저 천도의 이야기는 [[노자]]의 이야기에서도 나오는데 그래서 유학자들이 틈만나면 저런 소리를 할때마다 "도교에서 할 법한 소리를 왜 하냐"라고 했고 이것이 곧 이기이원론이라는 당쟁으로 번지게 된다. 몰라서 그렇지 [[김부식]]도 본시 고승들과 꽤 가깝게 지내고 불교와 관련된 시도 적었다. 그리고 조선왕조 유학자들 중에서도 유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도교를 은근히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도교의 경우도 도가와 도교 분리론을 주장하는 쪽은 [[교종]]이나 초기불교쪽이고 반면 도가와 도교의 일체론을 주장하는 것은 도교를 좋아하거나 불교의 [[선종(불교)|선종]]을 좋아하는 쪽이다. 이는 고구려가 본시 불교를 받아들일 때 도교를 받아들이고 불교를 핍박했을때 영향이 지금도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정통 유교의 경우는 도가와 도교 분리론을 택한다. [[개신교]]나 [[천주교]]의 경우는 유교에 대해서 종교인지 철학인지에 완전히 확답을 못내리고 있지만 종교보단 철학으로 본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뚜렷한 답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하다. 대체적으로 철학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인본주의]]를 종교로 보지 않는 성향이 크다. 반면에 종교로 보는 쪽도 있는데, 유교 역시 하늘론에 근거하기 때문에 종교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전반적으론 인본주의에 근거했다는 점과 공자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종교로 보지 않는다. [[불교]]의 경우도 유교를 철학으로 대체적으로 규정하나 불교 역시 완전히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다. 이유는 유학자들이 불교와 가깝게 지낸 적이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유불선의 일치를 근거로 확답을 내리기 미묘하다. 대체로 불교의 경우도 [[팔정도]]와 [[육바라밀]]이 유학의 삼강오륜 등과 비슷한게 많기 때문이다. 철학의 반종교적인 특성을 강조해온 것의 역사도 복잡미묘하다. 이것은 근대철학의 탄생의 주문이다. 중세의 신학의 하위처럼 취급되던 철학이, 근대에 와서야 전세를 역전시켜서, 철학의 하위로 신학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은 종교적 인간관과는 다른 실존적 인간관을 묘사하려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학자들의 분투가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근대 철학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을 비롯하여, 철학으로서 연구하는 어떤 분야를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내세우려는 성향이 생긴 것이다. 명칭에 대한 이러한 문제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단어를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른 말도 있고,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어가 달라져서 뉘앙스가 달라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분류할 때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분류하고자 할 때는 그 사람의 강조점이 드러난다. 유학이냐 유교나, [[철학]]이냐 [[종교]]냐 문제는 고찰자가 유학의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한 지표다.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다. 신이나 인물을 숭배하는 종교, 또는 우주의 법칙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는데, 서양의 종교(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은 신이나 인물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했고, 동양에서는 우주의 법칙을 숭배하는 종교(불교, 도교, 유교)가 성행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는 유교 역시 [[천명]], [[인]]과 같은 법칙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유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하면 훨씬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띈다. 유교적인 구습을 떠올리며 무슨 소리냐 할 수 있는데, '''유교에서는 괴력난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세의 삶도 가정하지 않는다.''' 그 영향인지 유교문화가 자리잡았던 동아시아 지역은 다른 지역들에 비하면 극단적인 종교적 색채는 자리잡지 못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인 권역에 속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당장 오랜시간 유교사상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던 한국은 무종교 비율이 웬만하게 세속화된 서양국가들보다도 훨씬 높다.[* 그와 더불어 교육열이 높은 것이나 집단주의로 집단의 단기 효율성은 극대화시키는 특징 등등,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에는 지역에 자리잡은 유교문화적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