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문단 편집) === 결론 === 여러모로 따져볼 때 유고슬라비아는 내부의 문제가 많이 있기는 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내분 요소들이 내전으로 인한 국가 붕괴를 필연적으로 부를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유고슬라비아 정도의 내부 문제를 가지고도, 내전과 학살 같은 폭력 충돌 없이 국가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매우 많이 있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가 결코 처음 시작부터 잘못된 나라였다고는 볼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는 평화로운 통일 민족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었으며 오히려 많은 [[나라 없는 민족]]들에 비하면 강대국들의 승인을 받아서 상당한 규모의 인구와 영토를 가지고 독립국의 지위를 얻었으니 운이 매우 좋고 외부의 대우도 좋게 받은 편이다. 실제로 티토의 지도력과 [[공산주의]]를 고려해도, 유고슬라비아는 수십년 동안 평화롭게 국가 체계를 갖추었으며 동서 [[냉전]] 사이에서 단독 노선을 걸으면서 독자성을 유지했고,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주축을 맡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유고슬라비아가 냉전 붕괴 후 통합에 실패하고 국가들끼리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여러 개의 소국들로 쪼개진데에는 통일 전 너무나 깊었던 각 공화국 간의 차이로 인한 [[분리주의]], 티토 사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프라뇨 투지만]],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밀란 쿠찬, 키로 글리고로프 등 [[민족주의]], [[지역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쟁취하려던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이 크다. 충분히 대화로 해결하여 통합을 유지할수 있었던 사안들을 극단적인 정책과 전쟁, 분리독립 이탈로 날려버린게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유고슬라비아의 비참한 종말은 그 어떤 외부 요인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기보다는 사소한 차이를 빌미로 삼아 증오와 폭력을 강화시켜서 극단주의를 추종한 '''유고슬라비아인들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크다. 어쩌면 [[지역감정]]이 초 극대화되어 생긴 비극이라고도 볼수있다. 이를 비꼬며 유럽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나서 유럽은 모든 게 바뀌었지만, 100년이 지나도 (전쟁의 발단이었던) 보스니아가 세르비아 땅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