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황후 (문단 편집) === 최후 === 위씨가 간통을 하고 태자를 죽이자 이로 인해 중종은 그녀를 불신하며 종친들과 대신들의 요청으로 위씨의 정치간섭을 막은 다음 위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 하지 않게 된다. 그러자 격분한 위씨는 결국 [[안락공주]]와 야합하여 자기는 [[여황제]], 딸은 [[황태녀]]가 되기로 하고 중종에게 독이 든 떡을 먹여 독살했다.[* 중종도 비참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의 [[문정왕후]]와 [[인종(조선)|인종]]과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당중종의 독살은 정사에 기록된 사실이고, 조선 인종의 독살은 야사에 불과하다는 점.][* 다만 당중종도 독살이 아닌 중풍으로 죽은 거 아니냐는 설도 있긴 하다. 독살설은 후에 위황후, 안락공주 등을 처단하고 즉위한 [[당현종]]이 이들을 매도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 아니냐는 것. 다만 어떤 사료에 근거한 주장은 아니고 정황에 의한 추측일 뿐이다. 정사인 구당서나 신당서 모두 안락공주가 떡을 먹여 아버지 중종을 시해했다고 적혀 있다.] 이후엔 직접 황위에 오르려 하나 황제인 [[측천무후]]가 쿠데타로 물러난 선례도 있고 직접 황위에 오르기에는 시기상조란 판단도 있어서, 맘을 바꾸고 당중종의 4남 [[이중무]]를 꼭두각시로 황위에 앉히고 황태후 노릇을 하려 했지만 위씨가 황제를 독살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 데다 그것을 두고 볼 정적들이 아니었다. 이에 위황후는 정적들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시숙 [[당예종]](당시엔 안국상황)과 시누이 [[태평공주]]를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눈치챈 당예종의 아들 이융기(당시 임치왕, 후의 [[당현종]])는 역으로 위씨를 증오하는 신하들과 고모인 태평공주와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켰다.([[당륭정변]]) 이때 위씨를 치는 명분은 '위씨가 선황을 시해하고 자신의 친족을 이용하여 금군을 장악한 후 종친들을 몰아내 황위에 즉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사태가 너무 급박하게 전개된 까닭에, [[안락공주]]는 눈썹을 그리고 있다가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반란군인 줄도 모르고 "눈썹 비뚤어진다"고 군인들에게 호통을 치다가 목이 잘리는 [[끔살]]을 당했다. 모녀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기고 머리는 참수되어 장안 저자거리에 효수되었으며 [[황후]]와 [[공주]] 자리에서 모두 폐위당해 대역무도죄인, 패역서인이라 불리며 당나라 내내 조롱받았다. 또 [[상관완아]]와 장녕공주도 이에 관련되어 죽임을 당했다. 다만 상관완아는 쿠데타 세력의 궁궐 내 협력자였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쿠데타 측 군인이 마주치자마자 다짜고짜 죽여버려서 제일 억울한 희생자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