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혜왕 (문단 편집) == 기록 문제 == 위 혜왕 후원 2년(기원전 333년), 소진이 조나라를 위해 합종을 성사하기 위해 유세하자, [[위양왕]]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연도상 시기로는 위양왕이 아닌 '''위혜왕이고,''' 위혜왕의 재위 기간은 소진의 활동 시기와도 맞지 않기에 다른 군주로 보인다. 위 혜왕 후원 3년(기원전 332년), 장의가 위로 하여금 진, 한 두 나라와 연횡시켜 제, 초를 치려 했는데, 혜시가 위를 제, 초와 합종시켜 군사 동원을 저지하려고 했다. 대신들이 모두 장의를 지지하자 혜시는 위양왕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한 쪽만 지지하게 된다면 다른 견해가 전혀 용납될 여지가 없어 어느 한쪽 견해만 받아들여질 것이라면서 이는 군주의 대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고 경계했다. 또 동일한 해에 제나라의 세객 진진이 위나라의 공손연을 설득해 제후국들에 관한 외교를 주관하도록 했다. 공손연이 진진의 말대로 자신을 연, 조 두 나라에 사신을 보낼 것을 청하자 위양왕이 허락했다. 공손연이 조, 연 두 나라에 사자로 가게 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자 이 이야기를 듣고 제나라가 위나라와의 수교가 늦어질 것을 우려해 공손연에게 제후국들에게 대한 외교를 맡겼다. 제나라에 이어서 초나라, 연나라, 조나라도 공손연에게 맡기자 위양왕은 공손연이 조, 연 두 나라로 가는 것을 중지시켰으며, 그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사자로 보내지 않으려 했다가 공손연이 조, 연, 초, 제 등 네 나라의 외교에 대한 것을 맡게 되자 위양왕도 공손연에게 위나라의 외교를 맡겼다. 그런데 기원전 332년은 연도상으로는 위혜왕의 재위 기간이다. 기원전 332년에 대한 다른 기록에서도 위혜왕으로 나온 것으로 보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저술할 때, [[분서갱유]]로 인한 기록 소실로 인해서 군주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