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조화폐 (문단 편집) == 역사 == 가짜 돈을 만드는 것 자체는 화폐가 나온 역사와 같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나온 위조 금화가 남아 있는데, '''구리에 금을 도금해서 만들었다.''' 이 위조 주화 때문에 사용한 것이 시금석과 시금침. 순금을 돌에 그으면 금이 묻어나오는데 금 함유량에 따라 색깔이 다른 것으로 구별하는 방법이다. 그 외 도금이 유행하자 아예 주화 자체를 잘라서 진위를 판별하였으며, 추나 저울을 이용해서 주화 자체의 무게를 재기도 했다. 귀금속 주화가 유통되던 옛날에는 무게 단위로 쟀기 때문에 화폐의 겉모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금된 주화는 무게는 진짜와 같을지라도 너무 두꺼워서(가짜 주화에 쓰는 금속은 금보다 가벼워서 부피가 크다) 딱 금화 두께 구멍을 통과할 수 없다. 이후에도 1930년대에 주석 원반에 은을 입혀 만든 위조 멕시코 은화도 있으며, 비교적 현대에는 영국 50펜스 주화를 납으로 만들었거나 옛 0.5크라운짜리 주화를 깎은 것이 발견된다. 세계 최초의 위조지폐는 [[세계 최초]]로 종이로 돈을 만들어 쓰던 나라답게 [[중국]] [[송나라]]에서 나왔다. 그리고 [[원나라]] 말기에 반원파들이 일부러 많이 만들어 경제를 말아먹는 수법으로 썼다. 하지만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많이 만들어서 원나라 경제 말고도 [[명나라]] 초기에도 이 돈 못쓰게 하느라 엄청 오랫동안 고생했다. 우습게도 명나라 말기에도 가짜 돈이 퍼져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 일부 쓰였다고 한다. 13~14세기에 걸쳐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중계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벌어들였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도 흑사병의 계속된 창궐과 [[포르투갈]]과의 해전에서 패배한 여파로 인해 해상 무역이 끊겨 경제적 타격이 크자, 궁여지책으로 [[구리]]로 가짜 [[금화]]를 만들어 뿌렸다가 오히려 화폐 가치가 폭락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경제적 타격만 더 크게 입었고 이로 인해 1517년 오스만 제국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조지 워싱턴]]의 호위병이였던 '''토마스 힉키(Thomas Hickey, 1748 ~ 1776)'''가 뉴욕 시내에 위조지폐를 뿌리고 다녔다. 심지어 이 사람은 28세 때 어려가지 이유으로 조지 워싱턴 장군 암살 음모도 꾸몄다가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는 [[어쌔신 크리드 3]]에서도 나온다. 조선 시대에는 세종대왕이 조선통보를 만들기 전까지는 닥나무 종이로 만든 저화를 발행했는데, 사람들이 사용을 꺼려서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다. 교초 트라우마가 가장 크긴 했지만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위조범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서 위조가 많았던 탓도 있다. 심지어 저화를 발행하는 관리가 몰래 종이를 들여와 저화를 찍어 소를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대한 처벌이 황당한데, 위조한 두 사람 가운데에서 한 명은 외아들이니 봐달라는 아버지의 탄원서에 감동해 면죄해 주었고, 소고기 먹은 때 자리에 없던 다른 한 명은 똑같이 처벌했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면죄해줬다. 하지만 가벼운 처벌이 화폐경제를 붕괴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조선통보 발행 이후에는 무조건 [[사형]]시켰다. 조선시대 말기에도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발행이 있자 위조 화폐가 만들어졌고, 당연히 잡히는 대로 사형당했지만 엄청난 돈이 되다 보니 당백전 발행 자체가 중지될 때까지 위조사건이 계속 터졌다. [[대한제국]] 시기 백동화가 만들어지자 백동화 제조기술을 가져왔던 일본에서 '''위조 백동화와 위조 백동화 제조기계'''까지 밀수되었다. 이게 얼마나 사회문제가 되었는지 일본내에서도 백동화 위조범 처벌법규를 만들었을 정도이다. 한편 위조화폐는 맞는데 화폐가치는 있는 묘한 사례도 있다. 구한말 정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고문들에게 지급하는 봉급이나 외국에서 수입하는 무기 등의 대금을 은화로 지불했는데, 이 은화는 러시아 루블 등을 모방한 위조 화폐였다. 당시 조선 정부엔 화폐로 지불할 은 자체는 있었지만 정작 이 은을 정식 화폐로 제조할 기술 및 설비가 부족해서 대충 외국 화폐를 모방한 위조 은화를 제조해서 뿌린 것이다. 하지만 위조화폐 주제에(?) 정작 은의 함량은 실제 화폐 가치와 비슷해서 받는 측에서도 '찜찜하지만 일단 은값은 맞으니 받지 뭐'라는 식으로 유야무야 처리된 것. 사실 이건 주화 시절에는 은근히 자주 있던 사례이기는 했다. 신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에서 유명한 주화의 도안을 배껴다가 찍어낸걸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시장에서는 위처럼 무게를 재고 두깨를 재는 등으로 귀금속 함유량을 확인한 뒤 정품과 그럭저럭 동일하거나 더 높으면 그냥 정품 취급 해주고, 좀 낮으면 할인해서 쓰거나 아예 다른 화폐로 분류하고 너무 심하게 낮으면(뭐 은화라면서 납에다 은도금한 수준이라던지 한 경우) 아예 안받는 식으로 하던 식이다.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소액권이 부족해서 사립 은행에서 소액 지폐를 자체 발행했는데, 이를 악용해 유령 은행 명의로 발행하는 짓도 유행했다. 보증처가 없는 데다가 쓸 수도 없으므로 이런 종류도 위폐가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