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예 (문단 편집) === [[양(남조)|양나라]] 건국 후 === 이후 소연이 양위를 받아 양나라를 건국한 후 도양자에 봉해졌으며, 후에 보국장군, 예주자사에 오르게 된다. 이후 북위의 수차례 침공을 막아내며 위명을 떨치기 시작한다. 양의 천감 4년(502년)에 왕사(王師)를 이끌고 북위를 공격하는데, 이때 소현성 전투에서 북위군을 제압, 이후 합비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합비는 북위의 남방 요충으로 북위 역시 장군 양영윤(陽靈胤)을 위시한 5만의 병력과 이외의 병력을 합비로 파견하여 양의 군대를 막게 하니 양의 장수들이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위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안심을 시킨다. '용병의 법은 기(奇)를 갖고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태여 병력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이후 북위가 인근의 회정성을 함락시켜 양민 1000여명을 죽이자, 위예는 크게 분개하였으며, 이에 비수에 쌓았던 보를 무너뜨려 합비에 수공을 감행하게 된다. 당시 합비에 있던 북위의 장수 두원륜(杜元倫)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양의 군대를 막고자 했으나 석궁에 맞아 전사하며 합비는 함락되게 된다. 이때 1만여명의 포로와 수만 두를 해아리는 가축을 취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