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안스카이 (문단 편집) ==== 울분 속에서 사망하다 ==== >'''위안스카이 : 반란군을 당장 쓸어버려라! 우리에겐 막강한 군대가 있잖는가.''' >---- >'''부하 장군들 : 우리의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온 국민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송구하지만 제정을 폐하고 공화정으로 다시 돌려놓는 수밖에...''' >---- >'''위안스카이 : 아아.... 내 일생의 야망이 이렇게 무너지고야 마는가...''' >---- >이현세 화백의 세계사 만화. 위안커딩은 끝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제재를 취소해서는 안 된다고 상소를 올리며 징징댔으나 믿고 있던 안휘, 강소, 절강 지역의 장군들도 제재 취소를 요구하자 [[1916년]] [[3월 22일]]에 위안스카이는 [[홍헌제제]]를 취소하고, [[3월 23일]]에는 [[중화민국 국가원수|중화민국 대총통]] 자리로 복귀한다. 이는 '''[[군주]]가 '자의'로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한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허나 이미 민심은 위안스카이를 떠난 뒤였다. 위안스카이는 [[펑궈장]]을 시켜 난징회의를 개최, 중국의 안정을 명분으로 위안스카이가 총통 자리에 임시로라도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했으나 각성 대표들이 모두 위안스카이 하야를 요구하면서 개판이 되고 말았다. 결국 위안스카이는 실망 속에서 분노와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리위안훙]]에게 총통 자리를 물려주라고 유언한 후 [[1916년]] [[6월 6일]]에 요독증이 악화되어 급사하면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흔히 그가 [[홧병]]으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죽기 바로 전 "그 놈이 날 해쳤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는데, 위안스카이의 가족들은 이 '그 놈'의 정체를 위안커딩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이 '그 놈'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불명이다.] 그래도 [[공화국]] [[대통령]]과 [[제국]] [[황제]]를 전부 경험한 지배자의 장례식답게 [[1916년]] [[6월 28일]]의 장례식만큼은 황제의 예우를 받으며 성대하게 치러졌고 북양정부의 실력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아버지를 부추겼던 위안커딩은 장례 기간 내내 위안스카이의 시신 앞에서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라고 울부짖었다고 하며 위안스카이의 셋째 첩 김씨가 위안스카이를 따라 죽으려고 시도하다가 저지되었지만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