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례성 (문단 편집) === 가설 1: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전통적으로 충남 직산은 위례성이 있었던 것으로 인식이 되었다. 《[[삼국사기]]》,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등의 지리지는[* 고려사에서는 양주도 후보지로 보았다.] 물론이고, 《[[삼국유사]]》의 저자인 승려 [[일연]]은 위례성의 위치를 충청남도 직산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기록했다. 물론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발굴 결과, 후보지에서 제외되었지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꾸준히 미는 주장이다. 2011년 12월에 천안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오랜만에 '''천안-직산 백제 초도설'''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삼국사기]]》 온조왕 13년조(기원전 6)에 마한과 웅천을 경계로 했다는 기록이 있고, 24년조(기원후 6)에 웅천에 목책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음을 근거로 들어, 웅천이 현대의 공주이므로 천안, 직산이 백제 초기 도읍이라는 예전 정설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정약용]] 이전의 고문헌들을 참고해야 마땅하고, 정약용의 오판 때문에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위례성이라고 잘못 해석되었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조선 초까지만 해도 직산에 [[온조왕]] 사당이 있었고, 직산에서 성곽 흔적 따위가 출토되기는 한다.[[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47911|#]] 이로 보아 직산은 '위례성'은 아니라도 백제와 어느 정도 연고가 있는 듯하다.[[http://chungnamsisa.com/detail.php?number=36712&thread=42|#]] 그러나 기존 주장의 되풀이인 데다가 향토색이 강한 주장이라 얼마나 받아들여야 될지는 미지수. 아직은 학문적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향토 차원의 주장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http://www.cninews.kr/news/service/article/mess_01.asp?P_Index=14176&flag=|#]] 게다가 마한과 웅천을 경계로 했다는 기록은 온조왕 때가 아니라 백제가 본격적인 정복전쟁에 나서는 '[[근초고왕]] 이전의 백제 영역을 온조왕 때로 소급한 것'이란 해석이 있기 때문에, '''천안-직산 초도설은 무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백제가 그렇게 빨리 남쪽으로는 공주 일대, 동쪽으로는 춘천까지 영역을 확장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오히려 직산이 백제 위례성이 아니라 백제가 부상하기 이전 마한의 맹주국인 목지국이라는 주장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