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례성 (문단 편집) == 건립에서 파괴까지 == [[졸본]]에 위치한 [[고구려]]에서 이탈한 [[소서노]]와 [[비류]], [[온조]] 세력 등이 남부로 내려와 [[한사군]] 및 [[마한]]의 땅에 거점을 차렸다. 기원전 18년, 온조는 하남(河南)의 땅에서 건국을 선포하고 수도 위례성(慰禮城)을 세웠다. 이곳에서 말갈족과 전쟁을 벌이고 성을 세워 낙랑군을 견제하는 등 국력을 불려나갔지만, 백제의 성장을 두려워한 말갈, 낙랑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수세에 밀리기도 했다. 또한 어머니 소서노도 죽자 온조왕은 결국 천도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기원전 6년, 온조왕 재위 13년에 한강 이남으로 위례성을 옮겼는데, 마한의 지원을 받았으며 성곽을 세웠다. 이 때 새로 쌓은 위례를 하남위례성, 기존의 위례를 하북위례성이라고 구분한다.[* 하북위례성에선 약 12년 동안 지낸 셈이다.] 새로운 위례성은 이후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붙잡혀 처형되는 475년까지 백제의 수도로서 존재하였다. 100여 년 뒤 백제가 중흥하고 고구려가 혼란한 틈을 노려서 [[성왕(백제)|성왕]] 시대 551년에 잠깐 고토회복에 성공했지만 곧 [[신라]] [[진흥왕]]에게 빼앗으나 훗날 고구려가 다시 회복했고 곧 신라에게 빼앗겼다. 2022년 잠실진주아파트 부지에서 한성백제와 6세기 신라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곳이 위례성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몽촌토성]], [[풍납토성]] 근처라는 점에서 위례성과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이 크고, 한편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도 구 위례성을 계속 활용했다는 추가적 증거가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4020469|[단독] 하반기 분양 앞둔 잠실진주서 '문화재 발견'…분양 밀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