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례성 (문단 편집) == 그렇다면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 하북 위례성의 위치 문제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다. 다산 [[정약용]]은 [[북한산]], [[강북구|삼양동]] 일대를, 이병도는 [[세검정]] 일대로 보았다. 한 역사학자는 [[광진구]] 일대로 비정하여, [[건국대]] 일감호가 [[궁남지]] 같은 궁지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파주 육계토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나마 의견이 모아지는 하남위례성과는 달리, 이쪽은 그저 의견만이 분분하여 백가쟁명이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아무튼 [[서울]] [[서울특별시/강북|강북]] 지역 어딘가일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는데,''' 일단 [[온조왕]] 시기부터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유의미한 유물이 있을 가능성은 낮은 데다 하북은 개발이 될 대로 됐고, 이미 땅 속은 콘크리트로 유린 당할 대로 당한 상태라서 유적이 있다고 해도 훼손되어 영영 못 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만 '''2022년 현 시점에서는 하북 위례성의 위치를 [[서울]] [[서울특별시/강북|강북]]이 아닌 [[임진강]] 유역에서 찾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3세기 초 무렵 북쪽 어딘가에서 [[서울특별시/강남|서울 강남]] 일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계열 주민들의 유적이 [[임진강]] 일대에서도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보상의 문제로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했던 것인데 고작 강북에서 지척인 강남으로 천도하는 것보다 [[황해도]]의 [[대방군]]과 가까웠던 [[임진강]] 일대에서 아예 서울 강남 일대로 천도했다는 쪽이 설득력이 높기도 하다. 무엇보다 문헌 사학에 따르면 백제 건국은 늦어도 2세기 즈음에는 발생했을 것이 분명한데, 하남 위례성이 위치한 [[서울]] [[송파구]]나 [[하남시]], [[광주시]] 일대의 유적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연한이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으며, [[임진강]] 일대를 바라볼 경우 이런 문제가 해소되는 편이다. 이러한 연유로 과거 사장되었던 임진강 일대가 다시금 하북 위례성의 후보로 떠올랐다. 하북 위례성의 후보 중 하나였던 파주 육계토성이 백제 초기에 축조되었다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발표가 2022년 7월 26일에 있었다. 다만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에서는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하북위례성 위치를 임진강 유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건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기록을 무시하는 거라고 할 수 있으며 근초고왕이 한산으로 천도했다는 기록에도 어긋난다. 더욱이 개로왕때 함락된 한성백제가 하남위례성이 아니라 하북위례성이라는 얘기도 있다. 개로왕이 아차산에서 죽었는데 하남위례성에서 탈출한 개로왕이 강건너 아차산에서 죽은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리고 근대 이전 서울 광진구 일대와 올림픽 공원 일대는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완전 다른 지역이나 다름 없었다. 절대 가까운 지역이 아니라는 거다. 참고로 고구려의 한성이 황해도 재령이란 얘기가 있는데 그건 나제동맹 이후의 얘기지 고구려 한성인 남평양성의 위치는 백제 하북위례성이 맞다는 얘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