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경 (문단 편집) === 위경 긍정설 === 저 주장을 모조리 인정한다면 3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명백하게 기원이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 [[한국]] 등으로 확실한 경전을 두고 전통적 불교 경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상단에서는 남의 이름을 가져와서 썰을 푸는 것은 전통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런 책을 '''[[위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부모은중경>은 [[석가모니]]가 길을 가다가 뼈를 보고 절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을 [[중국인]]이 썼다면 이것은 관대한 관점에서 위경이라고 안 불러줄 수는 있어도 위서가 된다. 종교의 위경 시비는 벗어난다고 해도, 위서 시비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번째로 작성자를 부처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경전이 될 수 없다. 내용이 좋으냐 나쁘냐는 나중 문제이다. 실제로 경전으로 인정받은 문서 대부분은 '[[석가모니]]가 말한 것이겠거니.' 생각했기에 경전이 됐다. 그 경전을 논할 때, 이 경전은 중국의 누군가가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읽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수단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 깨달음의 수단이 [[논어]]나 구약[[성경]]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논어나 구약성경을 불교 경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저 기준이라면 위경을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과거에 썼다고 했다는 이유로 <[[라마다경]]>을 위경이라고 했다지만, <부모은중경>도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들에 비하면 한참 후대에 쓰였다. 현대만 문제라면, [[노자]]가 인도로 건너가서 부처가 되었다는 <노자호화경>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교가 불교를 까내리려고 쓰인 이 경전도 <부모은중경>과 비슷한 시기에 쓰였는데 이 경전은 불경인가 아닌가? 만일 동남아에서 전란시기라는 이유로 '''전쟁을 긍정하고 적을 말살할 것을 주장하는 경전'''이 쓰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속오계]]의 임전무퇴의 배경이 되는 경전이 [[고려]]시대에 쓰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경전인가 아닌가? 즉, <라마다경>이건 <노자호화경>이건 모두 경전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위경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라마다경>은 불교를 모독하고 있음에도 위경이라고 하는 것은 통용될 수가 없다. 결국 위경 긍정설은 지극히 정치적 목적 때문에 존재한다. <부모은중경>이 위경으로 취급받았을 때, 효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같은 것은 차라리 사소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각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이 위경으로 판정이 나왔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너무 거대한 떡밥인 [[대승비불설]]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이전의 모든 경전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법화경]]은 내용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이전 경전보다 후대에 창작되었으며 이전 경전들과 그 목적이 다른 것이 명백하다.[* <[[법화경]]>을 [[대승불교]]의 시작으로 보는 입장에서 보면 대승과 소승은 신약과 구약만큼 차이가 벌어져 버린다. 애초에 법화경의 내용이 신약처럼 이전 규칙을 다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만약에 <법화경>이 대승경전과 별도로 존재한다고 본다면 <법화경>만 폐기하는 것으로 땡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법화경>은 위경이라고 규정하면,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천태종]]이나 법화경이 없으면 종파로서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일련종 같은 교단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불교]] 자체를 공격하는 경전들을 제외하면 좋게 좋게 넘어간다. 그리고 애초부터 각 불교 종파들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하여, '''각 종파별로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고 친설이 아닌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다시 말해 '''불교 내부에서도 무엇이 위경이고 아닌지를 일찍부터 가려낼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교상판석 작업은 실증적이고 학술적 중립을 지키면서 석가모니 부처니의 친설을 가려내었다기보다는 각 종파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게 주 목적이었고, [[인도]] 본토보다는 [[중국]]에서 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지만, 교상판석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인가?"'''라는 시대적 문제 해결이었다. 중국에서 교상판석 작업이 인도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 기본적인 이유 역시, 석가모니의 고향이자 불교 문헌이 순차적으로 등장한 인도와 달리, 중국은 불교 포교승들과 인도 유학승들이 저마다 석가모니 부처님 친설이라는 불경들과 기타 불교 문헌들을 들고 오다 보니 '''무엇이 진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인지를 가려낼 필요성을 인도보다 더 크게 느껴서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적 문헌비교학의 결과와 비슷하게 [[아함경]]은 초기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그 외의 대승 경전들은 후기의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동북아시아]]의 주류 불교가 [[대승불교]]다 보니 '[[석가모니]]의 초기 말씀=소승 경전=하근기들을 위한 방편론적 가르침/후기 말씀=대승경전=수준높은 가르침'이라는 사고방식이 박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일찍부터 무엇이 위경이고 무엇이 정경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