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호주 원주민들의 거주지였고, 인도네시아의 말레이인 선원들이 원주민들과 교역하기도 했으며, 17세기에 [[네덜란드]] 항해사들이 해안을 탐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미가 있는 최초의 유럽인 정착은 18세기 후반부터 [[영국계 호주인|영국계]]와 [[프랑스계 호주인|프랑스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29년에는 영국이 이곳에 스완 강 식민지(Swan River Colony)를 세웠으며, 1832년에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로 개명했다. 초기 스완 강 식민지는 [[퍼스]]를 중심으로 약간의 면적만을 차지할 뿐이었지만 점차 영역을 늘려나가 1870년대에는 호주 대륙 서반부 전체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영역이 되었다. 1885년에 [[금]]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으며, 이를 계기로 1887년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얻었다. 1890년대에 호주 연방 창설에 대한 여론이 부각될 무렵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는 연방 형성에 가장 부정적인 지역 중 하나였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것이었는데, 당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외 다른 호주 내 식민지가 불황을 겪고 있어 연방 가입이 득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주민들 사이에서 팽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는 호주 내의 다른 주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연방 내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올버니(Albany)의 광부들은 미래의 연방정부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연방 가입에 긍정적이었다. 당시 주의 헤게모니를 쥔 퍼스 지역에서 반연방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1898년과 1899년 사이에 연방가입 주민투표를 치렀던 다른 주들과 달리 이 지역에서는 주민투표가 치러지지 않았으나, 결국 주민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1900년대 주민투표를 치러 연방 가입을 확정지었다. 1920~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별도의 자치령으로 분리독립하자는 여론이 강해져서 1933년에 이를 두고 주민투표를 치렀으며 여기서 분리독립 찬성이 다수를 얻었지만, [[영국 하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현재에도 호주 연방의 한 주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씩은 분리독립 운동이 발생하지만 많은 지지를 얻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