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인천강지곡 (문단 편집) == 여담 == * 가사는 남아있었으나 음정은 전수되지 않았는데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곡을 붙인 [[https://youtu.be/VZsis7woePU|버전]]이 나왔다. 가사는 월인천강지곡 기2곡의 내용이며, [[전미선]] 배우의 유작이기도 한 작품에서 공교롭게도 '진혼곡'으로 재생되어 슬픔을 더했다. >世{{{-3 솅}}}尊{{{-3 존}}}ㅅ 일 ᄉᆞᆯᄫᅩ리니, 萬{{{-3 먼}}}里{{{-3 링}}}外{{{-3 ᅌᅬ}}}ㅅ 일이시나 눈에 보논가 너기ᅀᆞᄫᆞ쇼셔. >世{{{-3 솅}}}尊{{{-3 존}}}ㅅ 말 ᄉᆞᆯᄫᅩ리니, 千{{{-3 쳔}}}載{{{-3 ᄌᆡᆼ}}}上{{{-3 쌰ᇰ}}}ㅅ 말이시나 귀예 듣논가 너기ᅀᆞᄫᆞ쇼셔. > >세존의 일 사뢰리니, 만 리 밖의 일이시지만 눈에 보는 듯 여기시옵소서. >세존의 말 사뢰리니, 천 년 전의 말이시지만 귀에 듣는 듯 여기시옵소서. >---- >《월인천강지곡》 기2곡 >세존 일 여쭈리니 / 만 리 밖 일이오나 / 눈에 보는가 여기소서 / 세존 말 여쭈리니 / 천 년 전 말이시나 / 귀에 보는가 여기소서 >---- >[[나랏말싸미]] OST에서 번안된 가사 * 정설은 아니지만 월인천강지곡 안에 세종의 정실부인이었던 [[소헌왕후]]에 대한 비밀 메시지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상술한 월인천강지곡 기2곡의 내용이 바로 소헌왕후를 향한 메시지라는 견해이다. [[소헌왕후]]는 시아버지인 [[태종(조선)|태종]]에 의해 친정이 멸문의 화를 입었다. 당시 세종은 군권을 쥐고 있던 태종에 맞서 처가의 멸문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했으며, 이후 소헌왕후도 폐위하라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도 심씨 집안을 숙청하기는 했으나 소헌왕후를 폐위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소헌왕후가 승하한 후 세종은 [[창덕궁]] 곁에 불당을 세우려 했고, 대소 신료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으나 '나는 어진 임금이 아니니 불당 하나쯤 지을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논리로 건설을 강행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