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죄(기독교)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 신학적인 배경 == [[2세기]]경의 교부로 '일치의 학자'라 불린 [[이레네오]]는 최초의 인류는 미숙했으며, 이러한 '악'은 요나가 고래의 배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듯이 일련의 성장 과정이며, 우리는 대대로 그 '결과/여파'에 시달릴지언정 '''아담이 저주를 받은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5세기]] 무렵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해서는 '아담은 '''자발적으로''' 교만에 빠져서 그런 것이며, '''아담과 마찬가지로 그 후손들도 글러먹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리스어]]와는 달리 [[라틴어]] 'peccatum originale'는 두 단어 모두가 매우 중의적인 단어들인[* 'peccatum': 죄, 흠, 결함. 'originale': 조상의, 태초의, 원초적인.] 것도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성경/논란/윤리적 문제]] 문서에도 원죄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니 병행해서 참조하면 좋다.[* 당연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창한 개념이 그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고 시대가 지나며 교정되고 다듬어져 온 것이다.] 이게 '원죄'란 말을 쓰기는 했는데,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지은 죄가 아니라 남은 죄이며 짊어진 죄'''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죄를 지을 때 온전하게 자기 판단만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내면적인 미망, 콤플렉스, 압박 등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죄를 선택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간사한 동물이라 그러한 상태가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인간은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인간 본성이 타격을 받아 결함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의 인간관은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결함설이라고 이름 지을 만하다.[* 원죄론에서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선천적인 약점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의지로 죄를 짓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원죄를 지닌 상태의 인간 후손이 범하는 죄와 질적으로 다르다. 커버해 줄 구석이 없다는 것.] 이런 원죄로 말미암아 누구든 인간이라면 본성적으로 결함을 지니게 되어, [[하느님]]과 멀어지고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띄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정의롭고 선한 인간은 없다. 누구든지 원죄로 인한 내면적인 한계, 결함을 안고 산다는 것이 원죄의 본 의미라고 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서는 원죄라는 말은 사실 '''죄를 지으려는 경향성'''을[*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죄 그 자체가 경향성은 아니다. 경향성은 원죄로 인해 유발된 인간의 '결함'이다.]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사과나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죄'를 안 지을 수 없으며, 설령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하여도 죄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서방 교회를 뿌리로 두고 있으므로 원죄를 긍정하지만, 인간의 타락에 있어서는 상이한 주장을 한다. [[장 칼뱅|칼뱅]]과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아르미니우스]], [[존 웨슬리|웨슬리]]는 각각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분적 타락을 주장했지만, 가톨릭 교회는 인간에게 원죄는 있지만 처음부터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의'에 관련돼서도 상이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루터]]의 [[이신칭의]]는 인간은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인데 하느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주장인 반면 가톨릭의 의화(義化, Justification) 교리는 인간은 하느님에 은총에 의해 진짜로 의로워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칭의와 의화는 둘 다 영어로는 'justification'이라고 하지만 종파별로 가르치는 내용은 매우 다르다.[* 그래서 로마서의 '의'와 관련된 부분에서 천주교 성경과 개역개정판 성경의 번역 역시 서로 다르다.] 물론 가톨릭도 원죄에 따른 원죄 이후 인간의 타락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바로 그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들고 나온 개념이 인간의 타락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악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주장했고, 루터와 [[장 칼뱅|칼뱅]]이 그것을 더 심화해서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악에 물들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인간관은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내재적인 의로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관에 완전히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상반되는 개념이 '''본죄''', 다른 명칭으로는 '''자범죄'''가 있다. 아담과 하와로 인해 생긴 '상태 이상'이 원죄라면 [[자유의지]]로 지은 죄가 본죄이다. [[빚]]으로 비유하자면 원죄는 '조상이 낸 빚을 물려받아 내가 채무자가 된 것'이라면 본죄(자범죄)는 '내가 직접 대출받아 생긴 빚'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의미를 더 확장해서 어떤 인물, 조직 등이 [[과거]]에 도저히 씻기 힘든 죄를 저질러서 매우 오랫동안 속죄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 원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정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의 경우, 서방 교회와의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 중 하나로 원죄에 대한 해석을 꼽을 정도로 관점이 매우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