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제(전한) (문단 편집) == 생애 == 즉위 직후에 학사인 소망지(蕭望之) 등 유생을 등용했지만, 이들이 선제 때부터 측근으로서 중용되고 있던 환관인 홍공(弘恭), 석현(石顯)과 대립해 실각한 뒤로는 환관 중심의 정치가 계속되었다. 세금을 경감하고, 어려운 형법을 개정하고, 대규모 연회를 금지하고, 제사부터 별장, 황실 소유지 등의 경비를 절약했지만, 재정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전매 제도를 폐지했다가 재정만 더 망가졌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의 증조부인 무제가 워낙 전쟁과 토목 공사, 사치를 많이 벌이다가 국고를 탕진하여 재정을 망쳤기 때문이다. 원제의 아버지 선제도 무제가 망친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완화시키는 수준에 그쳤지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의 이런 행보는 결국 왕씨 가문의 세도와 지나친 유교 숭배로 [[왕망]]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이 많다. 왕망은 원제의 황후인 [[효원황후 왕씨|효원황후]]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왕소군]]은 원래 이 황제의 치세 때 궁녀로 있었다. 아들로 [[성제(전한)|성제]], 정도왕 유강, 중산효왕 유흥이 있었으나, 성제의 아들들은 어려서 효성황후 조비연에게 살해당해 장성하지 못했고 정도왕의 외아들 [[애제(전한)|애제]]와 중산효왕의 외아들 [[평제]] 모두 아들이 없어 후손이 끊겼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원제,version=30)] [[분류:한나라의 황제]] [[분류:기원전 75년 출생]] [[분류:기원전 33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시안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