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용덕 (문단 편집) == 인간관계 == 아들인 원창희(元昌熙, 1933-1984)도 육군 장교로 임관, 준장으로 전역했다. 1950년 6월 입교한 대한민국 첫 정규 4년제 육사 1기 입학생이 되었는데, 문제는 지원 및 입학 당시의 나이가 17세여서 입학 지원 조건에 되지 못했다. 그러나 당대의 실력자 원용덕 장군은 육사 심사위원들에게 원창희 장군이 육사에 입교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했고, 덕분에 같은 나이대로 탈락을 할뻔했던 [[박경석(1933)|박경석]] 장군도 생도로 입교하는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원창희, 박경석 등 정규 4년제 육사입학생들은 입교 후 25일 새벽([[6.25 전쟁]] 발발)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으려는 [[채병덕]]의 무모한 지시로 소총훈련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내촌-태릉 전투]]에 동원된다. 전쟁 동안 학우 중 3분의 1이 전사 및 실종되었으며, 첫 정규 4년제 육사 1기 졸업생은 이들이 아닌 [[전두환]], [[노태우]] 등이 속한 육사 11기들이다. 첫 정규 4년제 육사입학생들은 무려 46년이 지난 1996년에야 정식 육사 졸업장이 나오고, 육사 기수 대신 똑같이 전쟁터에 끌려나온 육사 10기(생도 1기)[* 이들도 2년 교육과정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전쟁때문에 1년 교육만 마치고 무리하게 투입되었다.]의 다음 학번이란 의미로 '생도 2기'로 불리운다. 아버지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에 군사정부시절 승승장구했으나, 10.26 이후 전역을 선택했고 월남전 참전당시의 부상 후유증때문에 1984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51세로 별세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40308000002501|#]] 40년대 말부터 콧수염을 길러서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해방 이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친분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어느날 성씨가 다른 사람을 삼촌이라고 데려오자 "정희야, 너 상놈이구나."라며 취중에 농담을 던졌고 박정희는 그를 외삼촌이라며 둘러댔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남조선로동당]] 간부이자''' 수많은 군인을 남로당원으로 가입하도록 선동한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친구, '''이재복'''이었다. 그래도 박정희와는 굉장히 친했고 박정희가 죽게 될 위기에서 건져준 사람이 원용덕이다. 박정희가 형인 박상희 때문에 연좌제로 잡혀들어가서 사형당할 위기에 몰렸을 때 박정희를 변호해주고 박정희에게는 박상희의 잔당들을 실토하도록 설득해서 박정희를 [[사형]]에서 [[백의종군]]으로 감형시키게 해 주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원용덕 덕분에 죽을 위기를 모면하고 육군본부에서 정보국 문관으로 백의종군을 했다. 게다가 박정희가 형 문제로 연좌제에 걸리기 전에는 [[대위]][* 이 때문에 형 문제로 연좌제에 걸려 육군본부에서 계급도 없이 정보국 문관으로 백의종군할 당시에도 [[김종필]] [[중위]]에게 윗사람 대우를 받았다. 또한 박정희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소령]]으로 복직하게 된다.]였는데 이 때도 박정희는 미군들과의 사이에서 계속 싸움이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그 둘을 화해시켜준 게 원용덕이었다. 미군측에서 정말 마음먹으면 박정희를 갈아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원용덕이 박정희를 보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