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성왕 (문단 편집) == 개요 == [[신라]]의 제38대 군주. 묘호는 [[열조]](烈祖). [[왕비]]는 숙정부인(淑貞夫人).[* [[각간]] 김신술(金神述)의 딸. [[헌덕왕]] 재위 기간 중 사망했다.] 부계로만 따지면 [[혜공왕]]까지가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직계다. [[선덕왕]]은 제17대 내물 마립간의 직계, 열조 원성왕부터는 제22대 [[지증왕]]의 후손이다. 지증왕(8대조)-지증왕의 3남 김진종(7대조)-흠운(6대조)-마질차(5대조)-법선-의관(태종무열왕의 사위, 보덕국왕 안승의 장인)-왜문(태종무열왕의 외손자, 원성왕의 조부)-효양(부친. 박씨 진골 박창근-[[선덕왕]]의 고모할머니 김씨녀 사이 부부가 낳은 박씨녀와 혼인)-원성왕 김경신(박씨 진골 박창근의 외손자) 이렇게 된다.[* 흠운, 마질차, 법선, 의관, 왜문, 효양 등은 삼국사절요 및 삼국사기에 등장하며, 김진종은 경순왕의 후손인 김재명이 1814년 건립한 경순왕전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고로 원성왕은 굳이 부계로만 따지면 경덕왕의 17촌 숙부인데 이 촌수는 우연찮게도 조선 문조와 문조의 양자 고종의 촌수와 똑같다. 숙부 항렬인 원성왕이 조카뻘 경덕왕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건 있을 수 있는 일. 다름아닌 지증왕도 소지 마립간의 6촌형이었으나 나이는 거의 20살 이상 많았다.][* 한편 김진종에 대해 조선 후기에 만연한 족보 조작과 같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으나, 해당 사항은 1814년에 금석문으로 남았기에 적어도 그 시기 이전에 해당 전승이 있었음을 분명히 나타내므로 다른 족보와 신뢰성을 같게 볼 수는 없다. 즉 적어도 평범한 족보보다 신빙성이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왕 마음 먹고 조작하려면 내물 마립간부터 흠운까지 가상인물을 여럿 만들든가 아니면 무열왕계에 보다 가깝게 조작해야 한다. 그러한데 지증왕 후손으로 오히려 어설프게 직계 부계를 설정했다는 건 신빙성이 나름 있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부계로만 따지면 혜공왕을 끝으로 태종 무열왕계인 신라 중대가 그 끝을 맺고, 선덕왕부터 엄청 먼 방계인 내물왕계로 교체되어 신라 하대가 시작한다고 여긴다. 열조 원성왕은 본인 자체는 사실 지증왕의 3남 김진종(법흥왕의 막내동생이고 진흥왕의 작은아버지다.)의 직계 후예기에 선덕왕보다는 상당히 무열왕계에 가까운 입장이었으나, 과도기격 임금으로 내세운 선덕왕 지지 세력도 포용해야 잔존 무열왕계를 누를 수 있었기에 일단은 내물 마립간의 후예를 표방하며 선덕왕의 동생으로서 왕위를 이었음을 선전했다. 원성왕 김경신은 모계로 따져보면 선덕왕의 6촌 동생이긴 했다. [[선덕왕]]의 할아버지 김원훈의 여동생 김씨녀가, 다름아닌 원성왕의 외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신라는 여성을 매개로 사위 및 외손 계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모계도 같이 따지면 선덕왕과 열조 원성왕도 태종 무열왕계에 속한다고 볼 수는 있었다. 선덕왕은 제33대 [[성덕왕]]의 딸인 [[사소부인]]의 소생이라[* 당장 사소부인은 삼국 통일을 완성한 제30대 [[문무왕]]의 증손녀이다.] 엄연한 무열왕 아들의 후손이고, 열조 원성왕은 무열왕 딸의 증손이라서 무열왕 딸의 후손이 된다. 부계로만 따지면 선덕왕과 열조 원성왕은 이전 군주들과 엄청나게 먼 방계로 보이지만, 모계도 같이 따질 경우 선덕왕은 이전 군주들과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열조 원성왕도 이전 군주들과 그렇게까지 먼 방계는 아니다. 게다가 열조 원성왕이 부계로는 선덕왕보다 자신이 무열왕계와 더 가깝다는 걸 불필요하게 강조할 경우 선덕왕 지지 세력들은 촌수 자체로만 따지면 선덕왕이 혜공왕과 훨씬 가까웠음을 내세워 이탈할 위험도 있었던 데다, 그런 논리라면 무열왕 직계인 김주원이 어째서 원성왕에게 왕위에서 밀렸는지 설명이 어렵게 되는 곤란함도 있었기에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조선 왕조에서도 이방원 세력이 집권했을 망정 처음에는, 엄연히 힘이 아직 남아 있었던 이성계 지지 세력, 아주 없진 않았던 정종 지지 세력 모두를 대놓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조선 태종은 굳이 친형 정종의 양자로서 즉위하는 무리수를 두어야 했다. 원성왕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타개하려면 혜공왕, 김주원, 선덕왕 등의 공통 조상인 내물 마립간 혈통을 강조할 수밖에는 없었다.] 또 선덕왕은 이전 무열왕 직계 군주들과 모계로는 매우 가까운 친척이지 이후 군주들인 열조 원성왕 및 원성왕의 후손인 군주들과는 촌수가 먼 편이다. 원성왕 이후 즉위하는 모든 군주는 [[신덕왕]] 외엔 다들 원성왕의 후손들이라 그는 신라 하대 왕계의 [[중시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선덕왕은 과도기적 군주이고, 모계도 같이 따져서 원성왕의 즉위를 기점으로 왕계가 무열왕 남계[* 무열왕의 아들의 후손.]에서 무열왕 여계[* 무열왕 딸의 후손.]로 교체된 것이라고 여기는 게 이해하기 훨씬 쉽다. 신라 하대를 시작하는 군주인 데다가 업적도 어느 정도 이룩한 군주인지라 오늘날 [[한국사(교과)|한국사]] 교육 과정에서도 제31대 [[신문왕]]과 함께 비중있게 다뤄지는 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