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운산군 (문단 편집) === 운산 금광 === 오래 전부터 [[금]] 산지로 알려질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운산금광이 존재하는데, [[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0033102255|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동양 최대 금광이었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운영하는 [[뉴욕]] 소재의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가 금광 채굴권을 따낸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대규모 채굴이 이어졌다.[* 비슷한 이름의 [[평안남도]] [[은산군]](광복 당시 평남 [[순천군]] 은산면)에도 금광이 있는데 조선 말기 은산의 금광 채굴권은 [[영국인]]이 가져갔다.] 이 금광의 부대시설로 [[구한말]]에 설치된 운산수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이기도 한데, 500kW급으로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최첨단 대용량 발전소였는데 역시 오로지 운산 금광 채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http://blog.khnp.co.kr/blog/archives/11575|#]] 현대 한국어의 속어인 [[노다지]]의 어원을 제공한 것으로 유력한 금광이기도 하다.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황제|고종]]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호러스 뉴턴 알렌]]의 기록에 보면 운산금광 채굴권은 [[을미사변|명성황후가 살해당하기]] 3달 전인 1895년 7월 15일에 허가를 했다가 바로 취소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명성황후는 운산금광 채굴권을 허락한 후 바로 취소하고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 당했으므로, 명성황후는 결국 금광 채굴권을 넘겨 주진 않았다. 사후 운산금광 채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다가 다음해인 1896년 4월 17일에 [[미국인]] 모스에게 채굴권을 허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인 것이다. [[대체역사물/한국|한국의 대체역사 소설]]에서 이 금광을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 전형적인 클리셰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일제강점기 시절 운산금광의 최대 채굴량이 30톤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의 근대화가 금광 채굴만으로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없다.[* 애당초 한반도에 그 정도로 금이 많았다면 [[조선총독부]]가 전쟁 내내 적자만 봤을 리가 없다.][* <[[한국 독립 전쟁]]>에서는 이런 한계를 감안해서 금광 자체를 써먹기보다 이곳의 채굴권을 가진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미끼로 끌어들여 한미 합작 은행을 만들고 본격적인 미국 자본 침투를 하는 전개를 썼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조선보다 훨씬 빠르게 문호를 개방했고, 150톤 가량의 생산량을 자랑했던 [[이와미 은광]]의 수익까지 더하여 자본을 축적했는데도 근대화 과정에서 돈이 모자라 파산하기 직전까지 갔다. 한 나라의 근간을 뿌리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근대화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운산금광의 매장량은 적진 않지만 여전히 부족한 규모였다. 다만, 한 푼 한 푼이 아쉬웠던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시드머니'의 역할로서는 유용했을 것이다. 평안북도 운산군뿐만 아니라 그 주위도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금광지대로, 운산금광뿐 아니라 이웃한 [[평안북도]] [[창성군]]에는 운산금광 못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인 대유동금광, 그리고 이 두 금광보다는 작지만 큰 규모의 여러 금광들이 존재한다. 대유동금광의 채굴권 역시 조선 말기 [[프랑스]]에 넘어갔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회수해서 개발했다. [[조선일보]] 창업주 [[방응모]] 역시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한 교동금광을 개발해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일제강점기 언론계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북한]]의 금광들은 오랫동안 많이 캐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금맥이 살아있는 상태로 보수적으로 잡은 조사에서도 북한은 세계 6위에서 10위 규모로 [[금]] 매장량이 아직도 풍부하다. 일제강점기의 낮은 기술 수준으로 매장량을 파악하고 캐다 중단된 상태로 현재 기술로 다시 조사하면 매장량이 더 늘어날 확률이 높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금 채굴 특성상, [[평양]] 시내마저도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한 북한도 채굴 작업을 오랫동안 중단한 상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