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황청심원 (문단 편집) == 조선 시대 == [[조선시대]]에는 [[제주도]]가 특산지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주성분 중 하나인 우황. 제주도산 소에 유난히 우황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청백리]]로 부자되기"로 김영이란 수령이 제주목사로서 선정을 베푼 다음 피부병을 위장하여 우황이 특효라고 하자 '''백성들이 소를 잡아''' 우황을 대거 보내 그걸로 부자가 되었다는 일화[* 다만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사또를 위해 주는 거니 돈 안 줘도 된다고 한 걸 반드시 제값 받겠다고 하여 제주 시세로 제값 다 치르기는 했다. 그걸 한양 시세로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그냥 주겠다고 할 정도로 선정 베풀고 우황을 얻는 과정에서 백성들을 손해 안 보게 했으니 국왕(정조라고 나온다)이 문제없는 걸로 본 모양이다.]가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사랑의 학교(만화)|사랑의 학교]]와 [[맹꽁이 서당]]으로 유명한 윤승운 교수의 맹꽁이 인물열전에 수록. 어떻게 보면 목사가 간접적인 우황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활동한 셈이다. 사신 일행들의 밀무역용[* 이 당시 조선은 무역을 국가에서 철저하게 통제해서 사적인 무역은 금지하고 대신 매년 정해진 수만큼의 선박만 입출항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거래하거나,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신 혹은 왜나 여진족 등에게 파견하는 통신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가는 이들에게 별도로 급여를 주지는 않는 대신 스스로 물건을 챙겨가서 파는것을 허용해주어서 수당을 자체적으로 벌충을 하도록 했는데 이 때 수행원들이 인삼이나 도자기, 우황청심원 같은 것들을 따로 챙겨가서 팔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수행원만 해당되는거고 사신은 나라에서 급여가 나오니까 금지되었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왕 가는김에 많이 들고가서 많이 팔면 이득이 커지니 이런 꼼수가 성행한 것이다.] 주무기이기도 했다. 인삼 등 다른 수출품과는 달리 부피가 작아 휴대가 간편하고 비상약이라 어느 정도는 가져가도 봐줬기 때문. 어디서든 우황청심원 몇 알이면 무사통과.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의하면 [[청나라]] 관리들이 너도나도 이 사신이 가져온 우황청심원을 찾았다고 하는데, 이유인 즉 [[중국]]에서 우황청심원이라고 파는 것은 죄다 짝퉁이라 영 약빨이 되지 않는데 조선산은 진품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또 청나라 사신들이 조선을 방문하면 왕공부터 귀인까지 앞다투어 우황청심원을 얻으려 했다는 기록이 당시 풍속을 묘사한 <열양세시기>에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