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생학 (문단 편집) ==== 독일 ==== '''유럽의 열강 중 이 우생학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나라라면 단연코 [[나치 독일]]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게르만족]]만이 우월하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다고 믿고 "세상은 우월한 게르만족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국 [[유대인]], [[집시]]같은 소위 '''부적격한 인종'''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 또한 독일 민족 안의 열등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독일인 [[동성애자]], [[장애인]]들도 [[T4 작전]] 등 [[홀로코스트]] 대상에 포함하여 조직적으로 학살하였다. 나치는 이러한 우생학적 조치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잡지 "Neues Volk"(새로운 민족)을 창간하는 등 다양한 선전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나아가 "우월한 게르만족을 보존한다"는 논리로 '[[레벤스보른]](생명의 샘)'이란 기관을 설립해 귀족/[[군인]] 집안의 영애나 장교를 모아 아이를 의무적으로 낳게 하고, 세계 각국의 [[고아]]들 중 게르만족의 특징을 강하게 가진 아이들을 입양시켰다. 1930년대 영국의 어떤 과학자는 "히틀러와 독일의 우생 정책을 비난하면 무식하고 비과학적이다"라 했다 [[카더라]]. 나치 시절 독일에 거주하던 한국인 중 일부가 우생학을 받아들인 인물이 존재하며 이런 의혹이 있다. 1933년 9월, [[윤치호]], [[권동진]] 외의 40명 이상이 설립한 조선우생협회의 핵심인물인 [[이갑수(1899)|이갑수]]가 있으며, 미국의 한국학자 프랭크 호프만은 저서 <베를린의 한국인, 사진 속의 한국인>을 통해 대표적인 사례로 의학자 김백평(1900~1990)을 꼽았다. 그는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대표자 자격으로 [[3.1 운동]]에 참가해 [[일본 경찰]]에게 잡혀 징역 1년 2개월을 살았고, 이후 독일 유학을 떠나 생물학 및 의학을 배웠다. 문제는 김백평의 스승이 우생학 전문가 오이겐 피셔(1874~1967)라 그가 우생학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무성했다. 이 의혹은 2020년 1월 UPI뉴스에서 [[http://upinews.kr/newsView/upi202001100109|단독 보도됐고,]] 3월 3일에 [[SBS 8 뉴스]]에서도 [[https://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1005679226|보도된 바 있다.]] 반면 김백평 유족 측은 이 사실에 대해 모른다고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