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팔이 (문단 편집) == 역사 == 용팔이의 역사는 1968년 개장한 [[세운상가]]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 낡은 모습으로 방치 아닌 방치 상태지만 세운상가는 1970~80년대 전자제품 유통 및 제조의 메카였다.[* 지금이야 [[종로]]가 할배들의 천국이지만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많은 유통단지 역할을 담당했다. 종로5가 약국골목이나 제기동 경동시장 등 아직도 유지되는 흔적이 있다.] 당시 세운상가의 주된 수익은 1980년대 초부터 불어온 [[오락실]] 붐에 편승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동네마다 한두곳 이상은 비디오게임 오락실이 있었다. 유통 초기엔 정직하게 일본산 제품을 수입했으나, 본격적인 기판 복제를 이루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복제업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고, 나중엔 복제에 특화된 [[대만]]의 품질 좋은 복제기판을 수입해다 유통하는 식으로 변질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폭들은 전자쟁이들 몇몇 앉혀놓고 자금 회전시키면서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오락실 창업 붐에 얹혀 복제하거나 복제품을 수입만 하면 팔려나갔으니 말이다. 이때 조폭 큰형들이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조폭들이 쓰는 판매수법으로 카셋트, 게임팩 등을 팔아제끼기 시작하던 사람들-굳이 부르자면 "세팔이" 쯤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용팔이의 시초 쯤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용산 특유의 삐끼문화와 위협, 강매 등은 조폭 문화에서 온 것이다. 그러기에 세운상가에서 팔던 게임팩들은 당연히 대만산 롬카피본이고, [[워크맨(음향기기)|휴대용 카셋트(통칭 워크맨)]]는 관부가세를 피해 보따리 밀수한 제품이었다. 거기까지야 그럴 수 있는데, 워크맨은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한 탐욕 때문에 모든게 분해당한 후 복제품으로 대체되어 팔렸다. '''정품 번들 이어폰은 형태만 똑같은 싸구려로 교체되고, 흔히 껌전지라 부르는 니켈카드뮴 전지는 옵션 구매 대상, 물론 충전기도 옵션이었다.''' 본체 가격만 듣고 싸다고 사면 눈탱이 맞는게 이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세운상가였다. 그러던 도중 PC 시대가 열린 1980년대 말 즈음에 용산전자상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용산은 세운상가보다 좀 더 젊고 밝은 이미지였다. [[(주)나진산업|나진]], [[선인]] 상가는 이전부터 전자상가 역할을 했었지만 용산이 세운상가를 제치고 선두로 나선건 1988년 [[전자랜드]]가 생겨나면서부터다. 주변으로 확장성이 결여된 세운상가와 달리 용산은 크고 넓으며 다양했다. 세운상가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소비자들 다수가 용산을 찾았다. 1985년 [[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 개통으로 [[신용산역]]이 생긴 것도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문제는 '''세팔이들도 용산으로 많이 이전해 버린 것.''' 새 부대에 헌 술이 섞여들어간 셈이다. 세팔이들은 세운상가에서 기판, 롬 카피 등 하드웨어 카피 기반의 사업을 펼쳤으나, 용팔이로 변신하면서 플로피 디스크 등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기반의 사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주와 함께 용산 역시 세운상가와 같은 마굴로 [[테라포밍]] 되어버린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