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병 (문단 편집) === 중세 === 서로마가 붕괴되어 [[게르만족]]이 서유럽을 채우던 중세 초기부터, 중세 성기에 해당하는 12세기까지도 [[유럽]]의 주력 병력은 [[봉건제]] 원칙에 따라 소집된 '''자유민'''이었다. [[게르만족]]은 자기자신의 무장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재산을 충분히 소유한 자유민들은 전사로서 역할을 겸하는 상무적 전통을 이어왔는데, 이런 전통이 기존 서로마의 습속과 결합해 나타난 것이 봉건주의였다. 서로마가 붕괴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유럽 땅에 살던 로마인들이 갑자기 다 죽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다 [[농노]]가 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자유민으로 편입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자유민은 농노보다는 낫다 해도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고, 투구와 방패와 창 혹은 활 정도만 간신히 갖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좀 더 부유하면 흉갑 등 다른 갑옷도 갖춰입어서 중보병이 되는 식. [[기사(역사)]]의 원래 유래는 이 시대의 비자유 예속민이었다. 일단 봉건주의 원칙 하에서 부족민이 부족장을 위해 전사로 봉사하는 날은 1년에 40일[* 게르만 관습법 시절부터 '40번의 밤이 지나는 동안' 으로 전해진 것이다.]이었다. 8세기 이래로 야만족의 침입이 상시화되어 각지에서 자율적으로 방어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프랑크의 군주들은 그 방어에서 손을 놔버리고 각지의 유력자들에게 관직을 주며 알아서 막게 해 군주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때 각지의 유력자들이 스스로 방어하는 와중에 이 징집령 40일이 턱없이 부족하자, 자유민을 동원하는 대신, 자기가 전부 먹여살려주고 있는 예속민을 무장시켜 전문 병사로 활용한 것. 그러다 소위 중세 성기로 분류되는 10세기-12세기에 봉건주의 심화 과정으로 인해 [[봉토]]를 급여로 받는 대신 전문직으로 일하는 관습이 퍼져 나간다. 기사는 점점 비자유 예속민이 아닌 봉토를 가진 준귀족 전문직 군인으로 변해갔다. 또 자유민 중 군인이 아닌 다른 전문직으로서 봉토를 수여받은 이들은 [[서전트]]로서, 징집령이 내려지면 기사에 대한 보조병으로 일했다. 그리고 12세기 중반 이후로는 봉토가 바닥나기 시작하여 예속민 출신들이 기사로 서임되는 것을 막는 법이 유럽 곳곳에서 제정된다. 또 중세 성기를 거치면서 법학과 행정이 발전하면서, 군주들은 기사를 자신들의 직속 가신으로서 행정관으로서 삼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기존의 기사들 사이에서는 평민기사(milites gregarii)와 귀족기사(milites nobiles)로 구분이 시작되었다. 봉토는 없고, 예속민제는 끝났고, 이도저도 아니게 된 기사 지망생들이 이 시기에 늘어났다. [[기사(역사)]] 항목에서 현실 문단에서 말하는 날강도 기사들이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무장을 갖췄고 전투 훈련을 받은 전문적인 군사력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러던 와중, 영주 중에서는 자기 집에 얹혀 사는 병사들을 놀리는 게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자유민들 중에서는 농사 지을 땅은 모자란데 무장은 있으니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봉건 계약에 의해 병역 의무를 부가받지 않으나 병역을 수행이 가능한''회색 지대'' 인력이 생성되었다. 이렇게 '''정부의 직접적 통제를 받지 않은 병역 자원'''을 두고 '''Free Company (자유 부대)'''라고 불렀다.[* 혹은, 그냥 Comapny라고 불렀다. 어원적으로는 '함께'라는 의미의 접두어 com + '빵'이라는 의미의 어간 pan 으로 이뤄진 것으로, 함께 빵을 먹는 사람들, 즉 동료나 동업자를 뜻한다.] 영주가 자신의 영향 하에 있는 인력을 요령껏 운용하는 경우는 "자유"롭지 않으므로 자유 부대라 하지 않았으나, 봉건 영주 vs. 자유 도시 같은 경우 처럼 실상 마케팅 표현(?)이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병역 자원"이란 점에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개념은 21세기에 와서도 아직까지 유효하다.'''[* 다만, 21세기 현대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징병 가능한 성인 남성 인구를 전부 유사시 징병 대상으로 군역부에 기록해 관리하기 때문에, 21세기판 자유부대란 보통 '''퇴역병'''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21 세기의 용병 사업은 소위 PMC, PIC라 부르는 ''군사 자문업''을 최고로 치고, 전장에서 직접 인력으로 갈려나가는 고전적 유형의 용병 사업은 막장 국가 출신이라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저급한 용병업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운용하는 국가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같이 주변 지역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 어려운 곳들로 한정되고있다.] [[동아시아]]에서 자유 부대와 가장 비슷한 형태의 용병이 있는데 바로 [[왜구]]들이다. 실제 서유럽의 자유 부대도 말이 좋아 자유 부대지 실상은 그냥 날강도 산적떼에 불과했고, 일부 극히 유명한 용병대[* 화이트 컴퍼니, 그레이트 컴퍼니 등.]을 빼면 그냥 일확천금 노리고 모인 싸움 좀 하는 어중이 떠중이들이었는데, 종종 용병업을 뛰던 왜구들이 이 자유 부대와 일맥 상통한다. 실제로 자유 부대들은 평소에 일거리가 없으면 그대로 산적으로 돌변해 약탈을 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프랑스어를 보면 더 노골적인데, 이들을 약탈자라는 의미로 '가죽을 벗기는 자' 즉 écorcheurs(에코르셔)라고 불렀기 때문. 이름 그대로 갑옷은 물론 옷까지 벗겨가며 약탈을 해댔다고 한다. 백년 전쟁 동안 약탈하는 쪽인 영국과 달리 용병대들에게 약탈당한 기억이 더 많은 프랑스에서는 용병대에 대한 시선이 더 나빴던 것. 심지어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와 소집령도 왕왕 내려졌다. 이후 좀 더 조직화된 용병 사업이 발전한 이후부터는 고용주가 돈 안 줄 때 도적떼로 돌변하는 수준으로 안정화 되었지만, 본질이 결국 싸움 좀 한다는 어중이 떠중이라는 것은 아예 국가적으로 용병 사업을 펼친 게 아닌 한 변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스위스 용병대나 헤센 용병대 같이 국가적으로 관리되는 용병대들은 자유 부대라고 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용병 사업이 궤멸한 원인'''[* 간단히 말해 '단두대 매치'에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 용병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총력전 상황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두대 매치를 깔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애초에 정부 통제를 벗어난 "자유 인력"이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기에 당연히 자유 부대를 통한 용병 사업이 무용해진다. 전 지구적 단두대 매치를 2번이나 해서 더 이상 단두대 매치격 전쟁을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게 된 요즘들어 오히려 용병 사업이 부활한 것엔 다 이유가 있다.]이 되었다. 14세기에 들어서 왕국의 영역이 안정되자 현대의 [[총력전]] 수준은 아니어도 [[백년전쟁|왕국대 왕국급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에 봉건 영주들에게서 찔끔찔끔 40일 동안 병사가 동원되는 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게 되자 저런 용병대들의 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또한 [[군주]]들은 [[중앙집권]]을 강화하여 이전 시대에 있던 징집령을 부활시키기 시작한다. '왕국의 방어를 위한 명백한 필요가 있을 때' 신민들을 동원하여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러한 '회색지대 용병대'도 '봉토를 받은 기사'도 아닌, 군주와 직접 계약하여 급여를 받고 복무하는 새로운 형태의 [[군인]]들도 나타난다. 이들이 바로 [[맨앳암즈]]라고도 불리는 이들이다. 이제 돈이 필요해진 군주들 때문에 소위 '방패세'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봉건 계약 상 병력 제공 및 병역 이행 의무를 면제하는 대신 돈으로 때우는 계약 방식이었다. 서양 중세의 역사가 복잡한 만큼 용병의 활용 방식이나 유명한 용병 부대도 무수히 많으며, 국가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도 천차만별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위에서 말한 프리 컴퍼니 혹은 루티예라고 불리는 용병단이 주역이었으며, [[스코틀랜드]] 출신 [[아일랜드]] 용병들인 [[갤로글라|갤로우글래스(Gallowglass)]]들도 활용되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계약자라는 뜻의 콘도티에리(Condottieri)들이 나타난다. 이 와중에 돈으로 사는 떠돌이 전투원 수준을 넘어 뛰어난 무예와 전술, 집단 대오, 적에 대한 무자비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성, 그리고 고용주에 대한 신의성실성까지 겸비한 중세 용병의 완성형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합스부르크]]와 오랜 교전으로 다져진 [[스위스 용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