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병 (문단 편집) === 고대 === 용병은 고대 국가 시절부터 존재해 온, [[인류]]가 가진 오래된 직업 중 하나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용병의 대가에 대해서도 규정해놓았다. [[고대 이집트]]도 용병대를 운용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또한 용병을 많이 사용했다. 중장보병 위주였던 그리스는 주로 [[스키타이]] 출신의 기병과 크레타 섬 출신 궁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 반대로 궁병이나 기병이 강했던 [[페르시아]]에서는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나 그 식민도시 출신의 중장보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일이 많았다.[* 그렇게 한 진짜 이유는 페르시아의 대군을 그리스가 물리친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층들이 그리스 군사가 자기네 백성들보다 더 용감하다고 여겨서였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아나바시스]] 항목을 참조바람.] 이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페르시아의 왕자 小 키루스가 고용한 1만여 명의 그리스 용병대다. 이 용병들은 반란을 일으킨 키루스를 따라 제국의 서쪽 끝인 [[리디아]]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행군했고, 그곳에서 왕의 군대와 맞붙었다. 그러나 고용주인 키루스는 전투 중 전사하고, 남은 용병들은 [[티그리스 강]]을 따라 방향을 돌려 아르메니아, 캅카스 지역을 통해 흑해 연안으로 탈출한다. 적지 한가운데에서 페르시아군 추격대를 따돌리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토착민들의 공격을 버텨내며 행군한 이 과정은 용병대의 장교들 중 한 명이었던 저술가 [[크세노폰]]이 남긴 책 [[아나바시스]](Anabasis)를 통해 매우 유명해졌다. 그리스 이후 용병으로 유명해진 고대 국가는 [[고대 카르타고]]다. 카르타고는 상업 국가로, 물론 자체적인 시민병이나 상비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병력을 용병에 의존했다.[* 이는 카르타고에서 시민권자들이 적어 시민권자 하나하나를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포에니 전쟁 이전 시라쿠사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시민병을 잃었던 것도 용병 의존도를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카르타고가 용병으로 주로 고용했던 것은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들과 [[켈트]]족, 그리고 누미디아 기병대였다. 이들은 상당히 잘 싸웠지만, 월급 문제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용병 전쟁]]) 용병에 의존하는 것의 취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오랫동안 용병들을 다뤄본 경험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도 조기에 제압하는 등 용병단의 발호로 나라가 휘청인 적까지는 없었다. 그 외에도 [[메시나]]에 고용되었다가 오히려 반란을 일으켜 메시나를 정복함으로써 제1차 포에니 전쟁의 원인을 불러온 이탈리아 남부의 '마메르티니' 용병 등 상당수의 용병집단들이 지중해 세계에 존재했다. 상비군 중심의 편성을 고집했던 [[로마군]]도 적지 않은 용병들을 고용했다. 강력했던 보병, 공병에 비해 기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탓에 [[누미디아]] 기병, [[갈리아]] 기병, [[게르만]] 기병을 수시로 고용하여 기병 전력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슬링|투석병]], [[투창]]병, [[궁수]]같이 상대적으로 고도로 숙련된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던 병과들이 용병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로도스섬 출신 투석병은 그리스군·마케도니아군에서, 발레아레스 섬 출신 투석병들은 로마군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다만 예시로 든 발레아레스 투석병이나 갈리아 기병대, 소아시아의 궁병대 등은 로마의 정복이 완료된 이후에는 속주병 혹은 보조병이 되었으며, 보조병은 용병과는 '''전혀''' 다른 로마 정규군이었다. 제정 말기에는 이미 공화정 말기에 진행된 중산 계급의 몰락과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용병의 비중이 올라갔는데,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저술가들은 이들 용병들의 정치적 타락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취급했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용병들의 발호를 로마 몰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 국가재정의 악화, 인구의 감소로 인해 종전과 같은 직업군인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에 더 가깝게 보고 있다. 애당초 말기의 로마가 국방을 용병에게 의존했다는 얘기부터가 이미 붕괴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게르만족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병대가 아니라 그냥 로마 정규군으로서 복무한 것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로마에서 찾았지 게르만족에서 찾지 않았다. 당장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기둥이라 불린 [[스틸리코]]와 [[아에티우스]]도 게르만족 혈통이었지만 로마의 장군답게 살다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