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병 (문단 편집) === 장점 === 현대 [[노동경제학]]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징병제]]와 [[모병제]]보다는 용병 고용이 그 사회에 최대한의 효율을 가져다준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용병의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learning by doing)과 기술 개발을 통해 군사 직종에 최적화된 노동력이라는 특징 때문. 용병을 활용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이론이 상당부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근대적인 개념의 민족국가(nation state)가 등장하고 국민군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전근대의 국가들은 그 정도의 군대를 항상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경우가 드물었으며, 특수한 능력과 기술을 다른 민족들에서 '구입'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누미디아족의 기마술, 갈리아족과 게르만족의 완력과 체력, 로도스 섬과 발레아레스 섬의 [[투석구]], [[제노바 공화국|제노바]]의 [[쇠뇌]]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전쟁터에서 구르다보니 [[전투력]]이 좋고 일반적인 징집병보다 사기도 높으며, 체력이나 용맹함 등 용병이 갖춘 덕목은 일반적인 병사들보다 훨씬 유용했다. 이러한 특징은 종종 특정 민족의 특기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 용병을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문제는 [[내전]]에서 그 짓을 했다는 것), [[스파르타]]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레굴루스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며, [[한니발 바르카|한니발]]도 갈리아 용병을 잘 활용했고, 누미디아 기병들은 포에니 전쟁 시기 카르타고와 로마 모두에서 고용되어 전쟁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동로마 제국 역시 [[페체네그]] [[기마궁수]], 노르만 중기병 등의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를 토착군대와 조합시켜 주변국을 캐관광 태우는데 성공했다. 중국에서도 사실상 [[후한]]대에서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기병의 핵심 전력을 차지한 것은 북방 [[유목민족]] 용병이었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봉건제 사회인 중세 유럽에서 용병들은 [[상비군]]으로 활용되기 좋은 군대였기 때문에 영주와 국왕들에게 자주 고용되었으며 카탈루냐 용병대 같은 경우 초창기 [[오스만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둘 다 버로우시켰고 16세기 헝가리의 용병대인 검은 군대는 [[보헤미아]], [[폴란드]]와 2대 1로 싸우고도 가볍게 승리했으며 급기야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그 수도인 [[빈(오스트리아)|빈]]을 함락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30년 전쟁]] 당시의 [[발렌슈타인]]으로,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30년 전쟁 중 독일 최고의 실력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국민군을 창설한 것으로 유명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군대도 상당수는 용병으로 채우고 있었다.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잘 관리된 용병 집단은 용맹성과 신뢰성은 어느 시대이든지 믿을 수 있는 요소다.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시로 일어났고 수많은 용병단이 신규 설립되거나 해체되는 때였다. 당연히 용병단간에 서로 부유한 왕조, 가문들과 계약을 이뤄내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만일 어떤 용병단에 대해 비겁하거나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용병을 필요로 하는 고용주들에게 퍼질 경우엔 계약을 맺을 수 없으며, 계약하더라도 열약한 조건 하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용맹성, 신뢰성이 우수하다고 알려지면 자신들과 계약하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높은 보수나 선불 지급, 장기 계약 같은, 더 나은 고용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용병단의 수입이 올라가고 소속 병사들에게 더 나은 급여와 근무조건도 제시할 수 있는데 실력있는 병사 영입에도 유리해지며 용병단의 질적 상승에도 연결된다. 이러한 긍정적 순환효과 때문에 용병단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용맹하며 신뢰성이 있는지를 국가와 가문들에 어필하고 다녔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전에서 증명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 용병]], 네팔 [[구르카]] 용병이다.이렇게 잘 관리된 용병 집단은 자신들의 출신지에 대한 소속감, 자존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병으로서 비겁한 모습,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만일 어떤 용병단의 병사가 비겁한 모습을 보이거나 계약상에 없는 민간인 약탈이나 학살을 벌인 경우엔 해당 용병단이 자체적으로 처벌을 가했다.] 유럽사를 기준으로 보면 중세 후기부터 아예 '용병 수출'을 국가 산업으로 육성했다 할 만큼 용병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지방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세 후기에는 스위스, 근세에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 우크라이나, 발칸반도, 그리고 헤센같은 독일계 공국 등 지역적인 연고가 확실히 있고, 근세 후기로 넘어가면 이런 용병 수출의 전통이 자국 내의 상무적 이데올로기, 사회적 자의식 (ethos)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끼쳤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용병 배출 지방에서 나온 용병들이 비겁하거나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 그 민족 용병 전체의 위신에 흠집을 내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고향 후배들의 '취직'길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에 이런 용병 수출의 전통은 부대, 개인 단위로 내려가면 더더욱 열심히 싸울 동기 기제가 된다. 그래서 보통 이들은 자신의 용병 부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코 디 로마]] 사건 당시에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189명 중 42명만이 살아남은 스위스 근위병이나(이 사건 이후 대대로 [[바티칸]] 경비병은 스위스 용병을 쓴다), [[프랑스 혁명]] 때 튈르리 궁을 지키고 있다가 몰살당한 786명의 스위스 근위병.[* 루이 16세가 정규군을 믿을 수 없어 고용한 용병들로, 프랑스 혁명 당시 '''다른 정규군은 모두 도망갔지만''' 이들만은 여전히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의 왕이자 고용주였던 루이 16세는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그대들은 임무를 다했으니 철수해도 좋다."라고 했고 무장 시민들도 같은 가난한 월급쟁이 신세인 이들에게 동정적이었으니 물러서도 상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위스 용병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성난 수만 명의 시민들을 막다가 단 한명도 남김없이 죽었다. 그리고 시민군의 피해도 커서 시민들의 화를 돋궈 시신도 처참하게 모욕당했는데 시신에서 발견된 편지에 따르면 물러서는 것 자체는 계약 위반이 아니지만 고용주를 포기하고 빠진 것 자체로 자손들이 비겁자의 후손으로 낙인찍혀 용병일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승산이 전혀 없음을 알지만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루체른에 있는, 부르봉 가문의 문장인 [[백합]]이 그려진 [[방패]]를 껴안고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을 묘사한 '[[빈사의 사자상]]'은 이들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고용주가 계약 종료를 선언했음에도 남아서 싸운 것은 스위스 용병으로선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또한 용병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충성심을 자랑한 바랑인 근위대[* 이 쪽은 조금 모호한 게, 이들은 따르던 황제가 '죽을 때'까지만 충성했다.]나 중세 헝가리 왕국 최후의 명군이었던 마차시 1세의 용병이자 근위대였으며 상비군이었던 검은 군대 같은 사례도 있다. 때문에 한탕 해먹고 튀는 양아치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용병집단'을 고용할 경우, 급료만 제대로 지불한다면 정규군 못지 않게 믿을만한 군대를 얻을 수도 있다. 즉 중세봉건시대에 주군에게 충성하는 기사도, 무사도와는 다른 용병단 특유의 프로의식이라는 것도 생겨났는데, 돈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은 해야 한다는 상도(商道)와 많이 비슷하다. 당장 [[이라크 전쟁]] 중 [[팔루자 전투]] 당시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시내의 미군을 지원하기 위한 증원 전력의 최선봉에는 악재가 있었지만[* 블랙워터 사는 4명의 용병을 작전지역으로 보내면서, 제대로 된 방탄차량은 커녕, '''지도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 지프를 타고 목표지역의 정문을 찾아서 수차례나 빙빙 돌다가 수상하다는 것이 발각당해서 제압당했다. 더구나 이 사건의 경우는 알고 봤더니 블랙워터가 받은 다음에 하위 용병 단체에 다시 하도급을 주면서 용병들이 결국 총알받이로 내몰린 케이스라서, 갑을병정 놀이는 용병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엄연히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러 들어온 용병들을 100% 죽는 자살돌격 임무에 보낸 거나 마찬가지여서 4명의 유가족들이 나중에 블랙워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스스로 나선 블랙워터들이 있었다. 현대의 PMC들도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가 활동하던 시기의 아프리카 같이 고용주와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으로만 계약이 되는 경우에는 정부와 용병 사이에 깊은 신뢰가 생기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현재의 강대국 산하 PMC들은 해당 국가, 혹은 동맹국의 군경 출신으로 구성원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신뢰 문제를 불식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돈이 지급되는 동안은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역으로 친위대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흔했다. 자국의 정치세력에 휘둘릴 수 있는 자국민보다 돈이면 되는 용병이 더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게다가 용병은 순수하게 물질적인 대우에 따른 충성심만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정치 세력으로 변질될 위험도 적은 편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정규군]]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용병이 싸고 또 용병을 고용하면 용병의 군사활동은 정규군의 것과는 별도로 계산되기 때문에 자국 내의 반전여론을 억제하기 쉽다. 다만 [[민간군사기업|PMC]] 수준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정규군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기는 한다. 물론 일반적인 육군이나 해병대 병사들을 동원하는 정규 작전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는 것이지 비싸기로 소문난 용병조직의 대표적 사례인 [[블랙워터]]를 이용한다고 하면 그 비교대상은 [[델타포스]]나 [[네이비씰]]이 되어야 한다. [[넵튠 스피어 작전]] 같은 걸 기획하는 [[CIA]], 실행하는 [[데브그루]] 등은 유지비 많이 들어가기로 유명한 조직이라 이런 수준의 작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비용 낭비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여전히 정규군과는 달리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제약이 덜해서 많이 계약한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에서 다수의 용병이 전사했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아예 용병 전사자가 미군 전사자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 특히나 보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성향 탓에 정규군은 엉덩이가 무겁고 뭘 하든 간에 규정과 절차가 복잡한데, 민간군사기업은 매우 발빠르게 움직이는 장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