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빅 (문단 편집) == 역사 == 요빅의 전신은 우익 대학생들의 모임인 보수주의 청년협회로 1999년에 결성되었다. 2002년 우익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코바치 다비드가 당수가 되었다. 2003년 공식적인 정당이 되었다. 이후 2006년 비슷한 극우 정당인 헝가리 정의생활당(MIÉP)과 연합해 선거에 나왔으나 지역구 1%, 비례대표 2% 득표율로 [[광탈]]했다. 이후 코바치는 일선에서 물러났고 당권은 보너 가보르에 넘어갔다. 2007년 보너 가보르가 대표가 되면서 요빅은 급격히 우경화되기 시작했다. 동년 8월에 가보르는 사실상 준군사조직인 "헝가리 호위대"를 창설했다. 호위대는 제복을 갖춰입고 다녔지만 실제로 무장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빅의 지역대표들은 [[SA|요빅이 정권을 잡으면 호위대가 새 경찰 조직의 토대가 될것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공식적인 무장조직이 오직 군대와 경찰에 한정된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일개 정치정당이 사병조직을 보유하려는 행위는 당연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유럽 사회는 1차 대전 이후 [[전간기|혼란기]] 때에 정치정당이 [[정치깡패|사병집단]]을 조직하여 일으킨 테러와 만행을 트라우마로 공유하고있다. 때문에 요빅은 헝가리 국내뿐 아니라 유럽 사회 전체로부터 나치를 따라하려는 거냐는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헝가리 검찰청에서도 단체 설립인가서에 허용되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점을 들어 헝가리 호위대를 기소했다. 재판 첫날에는 호위대 대원들이 기자들의 재판소 출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2008년 12월 16일에 헝가리 대법원은 헝가리 호위대의 활동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에 호위대 측에서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고개를 숙였다며 비난하고 재심 청구와 함께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유럽인권법원]]에 판결을 요청했으나 2013년에 최종적으로 원심유지 판결이 내려지면서 활동이 금지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0&oid=001&aid=0002747791|#]] 헝가리 호위대는 헝가리내 집시인이 헝가리 시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결성되었다. 호위대 창설은 기존 공권력과 경찰조직을 크게 불신하고 있는 헝가리 청년층이 요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헝가리 호위대 결성에 반대했던 전임 초대 당수 코바치는 다른 창당멤버 두 명과 함께 정계를 은퇴하였다.[* 코바치는 정계은퇴후 역사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8년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요빅의 인기가 상승했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요빅은 14.8%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일약 제3당으로 올라섰으며, 이후 2010년 총선에서 집시와 유대인 반대를 기치로 내건 요빅은 16.7%를 득표해 헝가리 국회 내에서도 제3당이 되었다. 제3당의 자리에 올라선 이후에도 요빅 당원들은 반유대주의 시위를 벌였으며, 요빅 당의 죈죄시 마르톤 의원은 공직자 중 유대인들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므로 헝가리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헝가리인 모두가 알 수 있게 등록해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242692|#]] 또한 20세기 초 헝가리의 독재자였던 [[호르티 미클로시]]의 동상을 세워 논란을 빚기도 했다.[[http://www.nocutnews.co.kr/news/1174341|#]] 요빅당은 그럼에도 인기를 이어가서 2014년 총선에서는 무려 20.2%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2015년 들어서는 지지율이 [[http://nezopontintezet.hu/analysis/nem-tort-az-uvegplafon-tovabbi-korlatok-jobbik-erosodese-elott/|28%]]까지 치솟기도 하였다. 2014년 이후부터는 청년층의 지지세가 크게 늘었다. 헝가리 청년계층은 삶의 수준이 불만족스럽고 국가의 부정 부패 문제 때문에 기성 정당들에도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신생 우익 정당인 요빅이 지지세를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다만 2015년말 기준으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여당에게 지지율을 빼앗기면서 [[http://nezopontintezet.hu/analysis/megbukott-jobbik-neppartosodasa/|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태이다. 한편 [[유럽 난민 사태]] 당시 요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N1TV 소속 카메라 기자가 난민에게 발길질을 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http://news.donga.com/3/all/20150910/73534648/1|#]] 이 무렵부터 요빅은 이전의 과격한 노선을 중지하기 시작하여 지도층에서는 극우파 정당에서 '중도보수' 정당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2018년 총선을 앞두고는 헝가리 내 유대인들에게 [[하누카]] 축하 카드를 보내고 집시들에 용서를 구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보너 대표는 "아무도 요빅이 권력을 잡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변화는 전략이 아닌 100% 신념과, 편을 나누는 종족주의가 파괴적인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http://news1.kr/articles/?3272697|헝가리 극우정당 요빅, 총선 앞두고 '180도' 변신]] 이 같은 태도변화는 최근에 피데스에 지지자들을 뺏기기 시작하면서 노선을 변경하여 외연 확대를 노리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8년 총선에서는 선전이 예측되었으나, 막상 개표를 해 보니 원내 2당이 되었기는 했지만 선거전 예측에 비해서 의석수가 저조하게 나온 덕택에 보너 가보르 대표가 사임했다. 이후 슈네이데르 터마시가 당대표에 선출되자 경선에서 그와 맞붙었던 강경파 토로츠커이 라슬로가 탈당해 '우리집 운동'을 창당하기도 하였다. 터마시의 승리는 당내 중도-온건파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2019년 유럽의회선거에서는 전체 헝가리에 할당된 [[유럽의회]] 의석 21석 중 단 1석만을 차지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의회선거 직후 치러진 지지율 조사에서도 역시 이전 조사에 비해 2퍼센트 포인트 하락한 8퍼센트로 민주연합과 모멘툼운동에 크게 밀려 4위에 그쳤다. [[2020년]]부터 페테르 여커브의 당 대표 취임 이후에 성향이 지속적으로 왼쪽으로 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미 집권정당인 [[청년민주동맹]]이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영향으로 급격히 우경화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우익들 목소리를 청년민주동맹이 더 강경하게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로는 헝가리 사회당이나 주르차니 페렌츠 전 총리가 소속된 민주연합 등과도 선거 연대를 맺으면서 사실상 중도우파 정당이 되었다.[* 이는 중도우파 정당이었다가 본격적으로 권위주의 루트를 타기 시작하여 극우 성향이 된 [[피데스]]와는 정 반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