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립 (문단 편집) == 제갈량의 탄핵 == 장완과 이소는 요립의 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서 제갈량에게 그대로 전했다. 이에 제갈량은 표를 올렸고, 요립은 서민으로 강등되어 문산군[* 지금의 리(理), 원촨(汶川), 마오(茂)현 일대로 [[쓰촨 성]]의 북서부에 있으며, 산골짜기 지형에 해당되는 험준한 지역이다. 물론 문산군의 현들 중에 도강언이 있는 도안현은 쓰촨 분지 안에 있으나 요립이 아버지인 유비마저 비방한 사람이라 유선이 관대하게 도안현으로 유배보낼 일은 없다.] 으로 유배를 갔다. 당시 제갈량이 올린 표는 다음과 같다. >장수교위 요립은 자신을 존대하고, 선비들을 평가하며 국가에서는 현명하고 달통한 인물을 임용하지 않고 평범한 속된 사람을 임명하였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또 만인을 인솔하는 자는 모두 소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황제를 비방하고 여러 신하들을 헐뜯고 명예를 훼손시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국가의 병사들은 훈련을 통해 정예가 되었으며 대오는 조직화되고 군령을 준수한다고 말하자, 요립은 머리를 들고 지붕 끝을 보며 분연히 안색을 바꾸어 말하기를, '무슨 말할 가치가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양이 무리를 어지럽히면 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요립은 높은 지위에 기대고 있으니, 보통 사람 이하는 그의 진위를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립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주군인 유비를 까고 다녔는지 배송지가 붙여넣은 [[제갈량집]]에 나온 제갈량이 올린 표의 추가 부분에선 제갈량이 요립의 오만함과 불충을 조목조목 까고 있을 정도다. 손권에게 요립의 재능을 칭찬한 이가 제갈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갈량은 처음엔 요립의 재능을 높게 봤지만 갈수록 이런 태도에 실망을 많이 했던 듯. 특히 이 탄핵표에선 익양 대치 당시 장사태수로 있을 때 요립이 장사를 수비조차 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놓은 채 도망갔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이걸 보면 유비가 요립을 용케 용서해줬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또 제갈량이 요립을 장수교위에 둔 이유도 밝혀지는데, 요립보다 공이 많은 [[이엄]]도 경에 올리지 못했는데 그보다 못한 요립을 그 이상으로 올릴 수는 없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제갈량이 계속 요립을 참아주면서 진작에 내치지 않은 게 용하다 싶을 정도, 아마도 처음엔 본인이 높게 평가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함부로 자르기는 뭣했을 수도 있다. >요립은 선제를 받드는 데 있어 충효의 마음이 없었고 장사를 지킬 때 성문을 열어 적을 맞이하였으며 파군을 다스릴 때는 어리석어 그 일을 저열하게 처리했습니다. 대장군을 따를 때면 비방하고 욕했으며 선제의 영구를 지킬때는 칼을 빼들고 그 옆에서 사람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보편적으로 직호를 증가시킨 바 요립은 잇따라 장군이 되었는데 신의 면전에 대고 말하길 "내가 어찌 마땅히 장군의 가운데 있겠는가! 나를 경(卿)에 봉하도록 표를 올리지 않고 오교(五校, 장수교위)에 상당하게 하다니!"라 하였는데 신이 답하길 "장군이라는 것은 대비(大比, 3년마다 하는 관리의 고과)에 따르는 것이고 경(卿)에 이르러서는 정방(正方, 이엄)도 아직 경(卿)이 되지 못했네. 또한 마땅히 오교에 있어야 하는 것이네."라 하였는데 이로부터 불만을 가지고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요립은 분명 능력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능력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확고했다. 그러한 실제 능력과 자만심 사이의 불일치가 결국 그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이에 유선이 조서를 내리니 >"삼묘(三苗)[* [[사죄]]인 공공, 단주, 곤, 삼묘 중 하나.]가 정치를 어지럽히자 유우(有虞, [[순]])씨가 추방시켰는데 요립은 광혹하나 짐은 차마 형벌을 내리지 못하겠으니 속히 불모의 땅으로 귀양 보내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이후 요립은 직접 처자를 데리고 스스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언젠가는 제갈량이 자신을 다시 부를 것이라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눈물을 떨구며 탄식하길 "나는 끝내 [[오랑캐|좌임]](左袵)[* 오른쪽 옷깃을 왼쪽 옷깃 위로 여미는 것으로 오랑캐임을 뜻한다.]으로 생을 끝마치겠구나!" 라고 했다. 선황제를 비방하고도 살아남은 것만 해도 다행인데 제갈량이 다시 부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보면 보통 자만심이 컸던 게 아닌 듯. 후에 [[강유]]가 문산을 통과할 때 그의 집을 들렀는데, 요립은 의기가 쇠하지 않았으며, 그의 논의도 진정 자연스럽다고 칭찬했다. 요립은 그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고 그의 처자식은 그가 죽자 촉군으로 돌아왔다. 한편 [[삼국지연의]]에서는 별 언급이 없다가 제갈량이 죽을 때 "나는 평생 좌임(서민)으로 살아야겠구나!"라며 탄식하는 장면만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