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나라 (문단 편집) ==== 서경도, 동경도, 남경도의 농업 경제 ==== 동경도의 중심지인 요양은 수초가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했으며 목재 · 철 · 소금 · 물고기 등이 많이 산출돼서 이익이 많았다. 그리고 태종대에 발해인들을, 성종대에 숙여진인들을 요양 지역에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지역 개발에 힘썼다. 이로 인해 동경도의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발전했다. 그리고 황제들은 이주민들이 많은 동경도의 조세와 부역을 낮게 부과해서 동경도의 농업 성장을 촉진시켰따 동경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해인들은 농사 기술이 뛰어나서 동경도의 농업 발전을 제고하고 막대한 양의 농산물을 생산했다. 심지어 성종 태평 연간에 연운 지역에서 기근이 들자, 호부부사(戶部副使) 왕가(王嘉)가 요동의 곡물을 연운의 주민들에게 나눠준 일도 있었다. 후대에 아골타가 동경도를 유린할 때에 요 왕조가 저장한 곡식 수십만 석을 취해 군량을 확보했다고 하니 동경도의 농업 생산력이 상당하고 곡물 비축도 잘 이루어졌다고 평할 수 있다. 동경도 북부의 생여진 부족들은 초보적인 수준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이들은 마, 조, 피 등의 곡물과 파, 부추, 마늘, 박 등의 채소를 재배했다. 송막기문에 따르면, 혼동강([[송화강]] 중류)와 영강주(길림성 부여현) 일대의 주민들이 복숭아와 자두 같은 과수를 재배하고 냉해 방지법과 추운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과수를 키우는 기술을 터득했다고 한다. 요 조정은 서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북 지역에도 둔전을 설치했는데, 황룡부를 중심으로 조성한 둔전은 주둔군이 먹을 군량을 조달하는 한편, 동북의 여진인들에게 농경 기술을 전수하고 동북의 농업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남경도는 거란국지에 따르면 "채소, 과실, 곡식 등 나지 않는 작물이 없고, 상 · 마 · 보리 · 양 · 돼지 · 뀡 · 토끼는 불문가지다. 이곳은 물이 달고 땅이 기름졌으며, 사람들이 재주가 많았다."는 내용이 전해질 만큼 땅이 비옥하고, 남경도와 서경도 남부의 대동부(大同府) · 울주(蔚州) · 응주(應州) · 삭주(朔州) · 무주(武州) · 귀화주(歸化州) · 가한주(可汗州) · 유주(儒州) 등의 지역도 농업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해 농업 중심지로 기능했다. 그러나 당말과 오대의 혼란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건국 초기에 한인 포로들을 잡아와서 정착시키고 새로 군현을 세웠다. 그리고 요의 황제들은 농업 인구를 늘리는 것과 농업 생산을 중시했으며 농민들이 편안하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연운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