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왕내제 (문단 편집) ==== [[고조선]] ====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옛 기자의 후예 [[조선왕 1세|조선후]]가 [[동주|주나라]]가 쇠약해진 것을 보고,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가 스스로 왕이 되어 높이고 동쪽의 땅을 공략하려 하자, 조선후도 스스로 왕을 칭하고 병력을 일으켜 거꾸로 연나라를 치고 [[동주|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다. 그 [[대부례|대부 예]](禮)가 간언하여 멈추었다. 예를 보내 서쪽으로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여, 연나라도 그만두고 공격하지 않았다. >---- >《[[위략]]》 《[[삼국지(정사)|삼국지]]》와 《위략》에 따르면 [[전국시대]]인 기원전 323년에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연역왕|희퇴]](姬脮)가 왕을 자칭하자 [[조선왕 1세|조선후]]도 왕을 자칭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진시황]]이 황제라는 단어를 만들기 전이었으므로 황제라는 단어가 없었다. 상·주 역성혁명부터 [[춘추전국시대]] 전반까지는 주나라만이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제후들은 공·후·백·자·남의 5등작을 사용했다. 즉, 당시 고조선은 스스로를 [[천자]]의 국가로 칭한 것이다. [[단군조선]] 이후의 [[위만조선]]에서는 국왕의 후계자를 황제의 후계자를 칭하는 용어인 [[태자]]라고 불렀고[* 단 당시는 아직 천자의 후계자=태자, 제후의 후계자=세자라고 명확히 구분되기 전이다.] '[[비왕]](裨王)'이라는 제후왕 혹은 왕작(王爵)이 존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