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왕내제 (문단 편집) === 유럽 === 유럽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곧 [[로마 제국]]이었기 때문에, 황제를 자칭해도 일단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앞에서는 자세를 낮추었다. 대신 동로마의 황제가 [[바실레우스]]([[임페라토르]]) 칭호를 허락하는 등 좀 더 유연했다. 로마는 역사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황제를 여러명 두는 경우가 있었다. [[사두정치]] 시기엔 4명의 황제를 두었으며 국정 효율을 위해 로마를 동•서로 나누고, 한쪽의 제위가 비어있을 경우 반대쪽에서 황제를 임명하기도 했으며, 종종 [[공치제|공동 황제]]란 제도를 통해 황제를 2명 두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실레우스 칭호 허락은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이다. 동로마 제국은 대체로[* 800년 프랑크 제국의 성립과 800년대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변에서의 동로마-프랑크 전쟁, 962년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 968년 신성 로마 제국 [[오토 대제]]의 사자 리우트프란트(Liutprand of Cremona)와 동로마 황제 [[니키포로스 2세]] 간의 동로마-신성 로마 간의 관계 및 호칭 설정에 대한 기싸움, 1, 2, 3차 십자군 내내 일어났던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귀족, 기사들의 밀땅, 12세기 [[베네치아-동로마 무역 전쟁]], 결정적으로 1204년 [[4차 십자군]] 등 예외가 많은데? 라고 할 수 있지만, 일단은 이렇다.] 유럽 국가들에게 대접을 받아왔으며 주변국들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황제 칭호를 수여받기를 열망했다. [[중세]]에도 제후들 사이에서는 로마 제국만이 유일한 제국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여기에 열등감을 느낀 [[서유럽]] 군주들이 동로마 제국을 '그리스인들의 제국'이라고 깐 적도 있긴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도 동로마의 황제가 바실레우스 호칭을 허락한 다음에야 자신있게 제국을 칭할 수 있었던 경우였다. 이와 비슷하게 [[공국]]이라는 체제는 사실상 독립국이면서도 [[왕]]의 호칭을 쓰기 힘들어서 만들어진 국가 형태이다. [[프로이센]]은 급이 낮아서[* 프로이센의 군주는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선제후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을 겸했다. 물론, 선제후의 권위와 특권은 국왕들에 준하는 수준이었지만, 유럽 내에서의 공식적인 왕국들과 비교하기엔 급이 낮았다.], 대외적으로 König '''in''' Preußen(King '''in''' Prussia)의 호칭을 사용했으나,[* <[[위트레흐트 조약|위트레흐트 조약문]]> 등을 참고할 것. 대충 해석하면 '프로이센에서의 왕'(안에서는 왕, 밖에서는 제후)]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는 [[선제후]]의 호칭을 사용했고, 1772년 [[폴란드 분할#1차 분할(1772년) -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König '''von''' Preußen(King '''of''' Prussia)의 호칭을 사용했다. 사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은 [[동군연합]] 상태인 프로이센을 흡수 합병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명목상으로는 프로이센이 거꾸로 브란덴부르크를 흡수하고 왕국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었는데[* 기업으로 따지면 [[역합병]]이나 [[우회상장]]과 유사하다.], 이는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원래의 프로이센이 신성 로마 제국 밖에 있어서 왕을 칭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이 세워질 시기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종교법 학자들을 동원하여 "왕은 그의 왕국에서는 황제다!"([[라틴어]] Rex imperator in regno suo!)라는 식의 왕권신수설적 이론을 펼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는 부정하지는 않되, 자기 나라에 그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막아낸 사례도 있다.[* 특히 프랑스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국력과 맞먹거나 더 강했고 뿌리가 신성 로마 제국과 같은 프랑크 왕국이기 때문에 프랑스 국왕은 황제만 아닐 뿐이지 역사, 정통성, 권위면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도 별로 꿀리지 않았다.][[https://blog.naver.com/shfrhvmsakdd/222703782912|관련 링크]] [[카스티야 왕국|카스티야]]-[[레온 왕국|레온]]의 [[알폰소 6세]]는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로 칭제했지만 당연히 스페인 밖에서는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러시아]]의 경우, [[모스크바 대공국]]이 [[루스 차르국]]으로 바뀌면서 [[차르]]의 호칭을 사용했으나, [[러시아 제국]]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외국에서 차르의 호칭을 인정받지 못하고, 모스크바 대공으로 불렸던 적이 있다.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등극 이후에는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고려한 외왕내제는 사라져서 유럽에서 좀 힘 센 나라의 왕이다 싶으면 너도나도 황제를 칭했다.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나폴레옹 1세]]가 [[프랑크 왕국]] 시절을 구실로 황제로 등극했고, 이에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도 [[오스트리아]] [[황제]]라는 칭호를 만들어냈으며, [[영국]]과 [[포르투갈]]은 각각 식민지인 [[인도]]와 [[브라질]]을 이용해 인도 황제, 브라질 황제라는 자리를 만들어 황제 호칭을 얻었다. 근대 [[불가리아 왕국]] 국왕은 [[불가리아 제국]]이 사용하던 '차르', [[그리스 왕국]] 국왕은 [[동로마 제국]]이 사용하던 '[[바실레우스]]'(Βασιλεὺς) 칭호를 사용했으나, 이들 모두 영어로는 King이라 번역된다.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도 로마 황제를 칭했으나 유럽에선 받아주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오스만 제국 황제를 황제 취급해주긴 했지만, [[이슬람 국가]]이므로 로마 제국의 [[후계자]]나 서양 기독교 수호자로서의 황제로 인정한 건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중동]] [[이슬람]] 문화권을 제패한 [[강대국]]의 [[파디샤]]로 인정했을 뿐이다. [[청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은 서양 국가들도 억지로 청나라 황제한테 숙여야 했다. 영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시절 [[건륭제]]에게 파견된 조지 매카트니가 건륭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할 것을 강요받았다. 매카트니는 영국이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여 논쟁이 났다가, 결국 건륭제 뒤에 [[조지 3세]]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한쪽 무릎만을 굽히고 손에 입맞춤하는 영국식 의례를 취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된다. 이게 왜 그랬냐면 청나라는 황제가 다스리는 황국이고, 영국은 국왕이 다스리는 왕국이기 때문에 황국>왕국이라는 법칙이 성립되어 결국 청나라>영국이 이 법칙에 의거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황제의 존엄에 대한 경외심에 압도돼 결국 고두를 했다"고 [[정신승리]]를 하였고, 영국은 굴욕으로 여기게 된다.[* 이 고두에서 탄생한 영단어가 kowtow인데 '굽실거리다'라는 뜻.] 결국 영국은 어거지로 중국식 조공 책봉 체제에 편입된 꼴이 되었다. 물론 [[아편전쟁]] 이후로는 [[그런 거 없다|그런 거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