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왕내제 (문단 편집) ===== 왕실 예법 ===== 〈[[무령왕릉]] 지석(523)〉에서는 [[무령왕]]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비유하는 단어인 "붕(崩)"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미륵사]] 사리함기(639)〉에는 백제 [[무왕(백제)|무왕]]이 신하들로부터 '대왕 폐하(大王 陛下)'라고 불려진 것과 국왕의 정실을 '왕후(王后)'라고 불렀음이 확인된다. 《[[삼국사기]]》에는 [[근초고왕]]이 열병식 때 중국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는 기록과 [[개로왕]] 등 여러 임금을 대왕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어라하]]', '[[건길지]]' 등 백제 고유의 왕칭도 같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예군]]묘지명(678)〉을 보면 백제 [[의자왕]]이 "참제(僭帝)"하였다고 쓰여 있다. 이는 '황제를 사사로이 칭했다'는 뜻이다. 또한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인 오우치 가문의 족보에는 백제 국왕을 '백제국 마한 황제 제왕(百濟國 馬韓 皇帝 齊王)'이라 부르고 있다. 예군묘지명의 경우는 백제 정벌의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서, 오우치 가문의 족보의 경우는 숭조사업의 일환으로 이같은 기록이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의도와는 별개로 최소한 의자왕 때 본격적으로 [[칭제]]하였을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슷하게 천자국만이 할 수 있었던 천제(天祭)를 지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는 매년마다 5제와 시조신 [[동명왕]] 및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