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왕내제 (문단 편집) ===== 왕실 예법 ===== 임금의 정처를 [[왕비|후]](后)라 불렀고 어머니를 [[태후]](太后)라고 불렀다.[* 제후국 국왕의 정실은 '비(妃)'라고 불러야 한다. 제후국의 국왕의 어머니는 왕대비(王大妃).] 그 대표적인 예로 [[동천왕]]의 사례가 있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천왕의 친모인 [[후녀]]는 산상왕의 [[소후]](小后)가 되었고, 동천왕은 산상왕의 첫째 [[왕후 우씨]]를 왕태후로 책봉했다. 그 밖에 '[[성상]]' 등 제국의 황실에서 사용하는 예법 용어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문헌 기록에 고구려 사람들이 왕을 일컬어 '성상'이라 칭했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357년경 축조된 [[안악 3호분]]의 고분 벽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대행렬도에 그려진 깃발에 '성상번(聖上幡)'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음을 통해 당시 고구려인들이 왕을 성상이라고도 불렀을 것이라 추측하는 의견이 존재한다. [[https://cafe.naver.com/booheong/82275|#]]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왕을 높여 부르며 성상이라 부른 사례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본래 성상이란 용어는 제후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칭호이다. 고구려는 또한 [[동맹#고구려의 제천의식]], 교제(郊祭)[* 국도의 [[교외]]에서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를 일컫는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동천왕]]의 탄생 일화에서 '교제를 하기 위해 잡아놓았던 돼지가 탈출했다'는 묘사가 등장하며, 실제로 동천왕의 아명인 교체(郊彘)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등 하늘에 여러 제사를 지냈는데, 이러한 천제(天祭)는 황제국만 할 수 있던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