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왜구 (문단 편집) === 조선 시대 === [[조선]] 건국에 이르러서도 왜구들의 침입과 약탈은 끊이지 않았다. 건국 시조인 [[이성계]]부터가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을 크게 소탕함으로서 입지를 쌓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의 왜구들 역시 고려 때만큼이나 골칫거리였다. 또한 아유타야와 마자파힛의 화교 사신 [[진언상]]이 일대기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조선,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에 큰 방해꾼이기도 했다.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254670102.jpg|width=300]] 이에 1396년 문하우정승 [[김사형]]의 지휘 아래 대마도 정벌이 진행되었고, 1419년 [[세종대왕|세종]] 초에 상왕 태종과 [[이종무]]의 지휘 하에 다시 [[대마도 정벌]]이 이뤄져 왜구에게 큰 타격을 주었지만, 왜구들의 반격이 거세 완전히 토벌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공격은 제법 효과를 봐서 1421년 4월 대마도주가 통상을 요청하자 조선 조정은 왜구를 회유하려는 목적으로 삼포(부산포, 내이포, 염포)를 개방하고 왜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명나라에 간 왜구들도 몰살당한데다 일본 내부에서도 [[무로마치 막부]]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해적인 왜구들을 토벌하며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약 50여년 간 왜구의 활동은 잠잠해진다. 그러나 [[세조(조선)|세조]] 말 즈음 [[오닌의 난]]을 계기로 일본의 최대 혼란기인 [[센고쿠 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열도 전역에 다이묘들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도적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당연히 왜구들도 다시 준동하기 시작한다. 이후 중종 때 [[삼포왜란]]을 시작으로 [[사량진 왜변]] 명종 을묘년에는 [[을묘왜변|수천명이나 되는 대규모 왜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도 선조 초기에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면서 왜구의 준동도 서서히 줄어드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왜구가 아니라 [[임진왜란|대규모 정규군이 조선을 공격했다]]. 그리고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일본도 안정화되어 왜구는 사라지게 된다. * 계해약조 : 1443년(세종 25년) 체결. 위에서 말했듯이 삼포를 개방하고 왜관을 설치하며, 조선과 교류하거나 방문하는 일본인들은 증명서를 소지해야 했다. 수도서제(授圖書制라고 하여 통교증명서인 도서(圖書)를 받는(授) 제도(制)가 있었고, 서계(書契)는 대부분의 외교 문서, 문인은 여행 증명서를 뜻한다. 참고로 서계는 후일 [[운요호 사건]]으로 시작되는 일본이 침입하는 단초가 된다. 또한 왜인들이 왜관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의 비용은 조선에서 담당했는데 이게 비용이 만만찮은 데다가 왜구가 이런저런 위반을 일삼으면서 삼포왜란이 터지게 되었다. * [[기유약조]] :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먼저 제안(내지 간청)함에 따라 맺은 약속. 아무래도 임진왜란 직후이다 보니 일본 측 무역선의 숫자를 제한하고 개항장도 부산포 하나로 줄이는 등, 자연스레 일본에 불리하게 적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