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왜검 (문단 편집) == 내용 == [[무예도보통지]]에 전하는 왜검은 4가지로 토유류, 운광류, 유피류, 천유류 이렇게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법을 연결해서 하는 왜검총보가 있는데 다른 기록에 살펴보면 구보인 무예신보는 8개 유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김체건이 배워온 검법 유파는 사실 8개라고 보는 설도 있다. 하나 어쨌든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던 정조시절에는 다 실전되고 오로지 운광류 하나만 전한다고 했다.~~ 왜검은 뒷방 늙은이 신세~~ 운광류는 그 기법이 매우 간단해서 천리세, 속행세, 산시우세[* 산 중의 가는 비라는 의미로, 왜검의 세법 이름들은 이와 같이 날씨와 관계되어 운치 있게 지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운광류 자체도 그 이름이 하늘의 빛, 즉, 번개이다.], 수구심세, 류사세로 이루어져 있고 기법은 주저앉으며 한 번 내려치고 앞으로 나가며 한 번 치고 또 앞으로 나가며 한 번 치고 솟구쳐서 한 번 치는 수법을 5회 반복하는 것이다.[* 굉장히 직선적이고 짧아서 쉽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해보면 체력 소모가 무척 심하다.] 이것이 왜검의 궁극적 목적과 가깝기에 정수만 모아서 남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고 또는 그냥 쉬우니까 남았다는 설[* 어쩌면 둘이 같은 거일 수도 있다. 접하기 쉽다는 건 양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고, 실용적 검법을 추구하는 건 조선 입장에서 그것 자체로 정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시절에는 이미 예도나 본국검 같은 조선의 검술이 존재했기에 왜검을 거의 버렸다는 설도 있다. 왜검은 결국 일본의 고류검술들과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오히려 고류검술들의 경우는 하나의 形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현대까지 맥이 끊기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다. 왜검은 오히려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일본검술 기법을 담고 있다. 이 왜검의 마스터인 김체건은 훗날 '교전(交戰)'을 만들기도 했다. '교전'은 일본 검술 유파의 가타(形)와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무예도보통지의 교전은 5합 이내로 끝나는 에도시대 유파들의 가타와 달리, 가토리 신토류 등의 전국시대 류파들과 같이 15합이 넘어가는 긴 형태의 가타라는 점이다. 큰 사선베기로 마무리하는 일본의 형과는 달리 마지막은 '''칼을 내던지고 씨름으로 마무리'''[* 아래 그림에 나온 投劍相撲畢(투검상박필)의 뜻]한다는 점이 특징. 사실 검술은 어떠한 무기술보다도 유술하고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렇게 단병접전을 벌이다가 상대의 무기를 봉쇄하고 초근접전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실전적으로도 상당히 효과적인 훈련이다. [[파일:external/cp.culturecontent.com/CP03030100009_0095.bmp|width=500]] 동시대 서양의 검술도 그렇고 검술에서 육박전을 상정하는 건 당연한 교리였으며 전통 맨손무술 중에서는 이러한 무기술에서 파생된 무술이 많다. 특히 검술의 경우는 권법의 동작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격검 훈련을 시킬 때 '백타'라고 하여 손을 빠르게 휘두르는 무술을 과목에 넣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