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안석 (문단 편집) == 왕안석의 개혁 == 왕안석은 인종에게 정치개혁안이 담긴 만언서(萬言書)[* 한자 1만 자가 쓰였다고 이러한 명칭으로 불린다.]를 올리기도 했지만 그가 중앙에 데뷔한 건 인종, 영종의 뒤를 이은 19세 젊은 [[송신종]]이 제위에 오르고 난 이후였다. 왕안석은 신종의 재가를 얻고 부재상인 한림학사로 임명된다. 그의 개혁 정책은 1069년~1074년에 걸쳐 시행되었고 서하의 침공 등으로 매우 피폐해진 국가의 재정난을 극복하고, 대지주와 대상인의 횡포로부터 농민과 중소 상인들을 보호 육성하여 부국 강병을 이루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 균수법 지방에서 올라오는 공물의 운송을 '발운사'라는 관청에서 통제하게 한 제도이다. 그동안 원거리에서 공물을 바칠 때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어 사실상 중간 상인들이 대납하고 폭리를 차단하여 방지하려고 하였다. 물자의 유통을 이치에 맞게 개선하여 국가재정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각 지역마다 현물을 납부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문제는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데 중앙정부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거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해당 물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멀리 다른 지방까지 가서 이를 구매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중간 상인들이 이익을 가로채기도 했다. (공납의 폐단) 왕안석은 발운사(發運司)라는 기구를 두고 중앙정부가 필요한 품목을 가장 편리한 곳에서 사들이고, 남은 것은 물품이 귀한 지역에 팔아 국가 재정에 보태도록 했다. * 청묘법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농사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어 지주들의 비싼 이잣돈을 얻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한 정책, 필요한 재원은 상평창에서 충당함. 신법을 지지하던 [[구양수]]도 이것 때문에 왕안석과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하게 된다. * 보갑법 10집을 1보로, 5보를 대보로, 10대보를 도보로 편성하여 장정을 징집, 훈련하여 민병으로 삼아 평화 시에는 치안 임무를 수행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관군을 돕게한 정책. * 시역법 자본이 적은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대상인들이 이익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고 국가 수입을 늘리기 위한 정책. 상평시역사(常平市易司)라는 국영 유통업체를 두고, 물가가 하락하면 상품을 고가로 매수하고 물가가 상승하면 저가로 되파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안이다. 또한 상인들에게 연 2할로 돈을 빌려줬다. * 모역법 역이 면제되어 온 관리, 사원으로부터 돈을 받아 실업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품삯을 주어 역의 형평을 기하고자 한 정책. * 보마법 백성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전쟁이 일어나면 군마로 쓰도록 한 정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