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부(송나라) (문단 편집) == 생애 == 왕부는 병주 기현 출신으로 왕조(王祚)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후한(오대십국시대)|후한]] 건우 연간에 진사 갑과로 급제하여 비서랑이 되었다. 당시 후한은 혼란기에 직면하였고, 왕부는 [[태조(후주)|곽위]]에 의해 종사로 벽소되었다. 왕부는 곽위 휘하에서 좌간의대부, 추밀직학사, 중서사인, 한림학사, 호부시랑, 단명전 학사를 역임하였다. 왕부는 곽위 사후 세종의 통일 사업에 공헌하면서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세종이 세상을 떠나고 왕부는 우복야가 더해졌다. 시영의 7살의 어린 아들인 [[공제(후주)|시종훈]]이 즉위하자, 왕부는 시종훈에게 세종실록의 편찬을 청하였고, 시종훈의 윤허를 받아 호몽, 장담, 왕격, 동순 등과 함께 961년에 세종실록을 완성하였다. 북송이 건국되자, 왕부는 사공이 되었다가 참지추밀원직으로 강등되었고 건덕 2년(964년)에는 태자태보로 강등되었다. 건덕 5년(967년)에는 모친상을 겪고, 태자태부가 더해졌으며, 개보 2년(969년)에는 태자태사로 승진하였다. 왕부는 북송의 재상을 지내면서 학문에 밝았고 역사서 편찬에 주력하였다. 세종실록을 편찬한 것과 더불어 소면의 회요와 최면의 속회요의 결루를 보충하여 당회요 100권을 편찬하였다. 또한 5대의 실록을 참조하여 오대회요를 편찬했고, 왕부는 역사서에 회요라는 체례를 완성하였다. 왕부는 태종이 즉위하고 기국공으로 책봉되었다가 982년에 사망하여 시중으로 추증되고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922년 출생]][[분류:982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