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권신수설 (문단 편집) == 동아시아에서 == [[동아시아]]에서도 [[천자]], [[천조]], [[천황]], [[천명]] 같은 표현에서 나타나듯 왕권은 하늘이 주신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서양에서 신에게 인격을 부여한 인격신이 아니라 동양에서는 [[범신론|자연의 법칙 그 자체를 천(天)으로 표현했다]]. 동양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사상이기에 '왕권신수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맹자]]도 왕의 권한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서양의 왕권신수설이 '하느님에 의해 권한을 받은 왕만이 정당하며, 따라서 폭군은 왕이 아니다[* 성서에조차 [[판관기]], [[열왕기]]에 신의 눈 밖에 나서 패가망신하는 왕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듯, 맹자 역시도 천명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닌 '필부'임을 주장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양혜왕 하편> 제8장이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지인(殘賊之人)을 단지 "그놈!"이라고들 하니, 저는 "무왕께서 그 '주'라는 놈을 처형하셨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라는 말은 들어 본 바 없습니다." 문제는 맹자의 사상이 동아시아에서 마이너했다는 것이다. 훗날 [[주자(철학자)|주희]]에 의해서 맹자가 다시 주목받기는 했으나, 재해석이 너무 심해서 맹자의 본래 주장과는 좀 멀어졌다. 그래도 맹자가 주장하는 민본(民本)은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지침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이 현실 정치에서 이루어졌는가는 다른 문제겠지만.[* 다만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그러려는 노력은 많이 기울이려고 한 편이다. 당장에 조선의 경우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아얘 왕을 어릴적부터 유교식으로 교육하고 그것도 모자라 평생교육을 통해 왕이 유교적으로 통치하게 만들려고 했고 왕도 이에 따라 적어도 민생에 관심을 가지는 척이라도 했다. 반면에 유럽은 말이 좋아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지 정작 절대왕정의 표본인 루이 14세는 별 성과도 없는 전쟁을 자주 벌여서 국고를 파탄냈다. 그 뒤를 이은 루이 15세도 마찬가지. 되려 왕권이 약해진 편의 시대인 루이 16세 &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나마 민생에 관심을 가진 편이다.] [[고려]] 시대에 '제왕신권설'(帝王神權說)사상이 있었다고 한다. [[https://m.kin.naver.com/mobile/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470289&qb|#]] 제국주의 시절인 [[일본 제국]]의 군주인 [[천황]]이 자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아라히토가미現人神 あらひとがみ)'으로 지칭하면서 강력한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한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