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와규 (문단 편집) === [[메이지 유신]] 이후 === 1868년 [[메이지 덴노|메이지 시대]]에 서구식 육식문화가 전해지면서 1872년 [[메이지 덴노]]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소고기를 섭취하게 된다. 이후, 일본에서는 소고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데 에도 시대까지의 일본 소는 어디까지나 농사 및 운송 등 업무용으로만 쓰였고 품종 개량 역시 그에 맞추어서 개량되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 요구하는 소고기와 우유의 공급량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서구 등 해외에서 소를 들여와 혼혈번식을 하는 등 식용 소의 품종개량을 [[http://okayama.lin.gr.jp/tosyo/history/2-2-2-21.htm|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87년, 2600마리의 서양 소를 수입해온 것이고 이후 1900년(메이지 33년)에는 정부 주도에 의하여 브라운 스위스, 홀슈타인 등 본격적으로 서양 소 품종의 정책적인 도입이 [[https://ci.nii.ac.jp/els/contentscinii_20181123011121.pdf?id=ART0007406172|개시되었다]]. 이렇게 품종 개량을 적극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1877년(메이지 10년)에는 [[https://nbafa.or.jp/mame/ikou.html|연당 도축두수]]가 3만여마리에 불과하던 일본 소고기 소비량이 1887년에는 10만 마리를 돌파하였으며 1900년(메이지 33년)에는 20만마리를 돌파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까지 불었던 일본 소와 서양 소 교접 광풍으로 인하여 1912년 10월 축산공진회에서 제안한 '[[http://okayama.lin.gr.jp/tosyo/history/2-2-2-31.htm|개량화종(改良和種)]]'은 1944년 와규(和牛)라는, 품종에 대한 공식명칭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 소에 대한 대표적인 품종명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한 편으로는 과거 일본에서부터 내려온 재래종의 순혈종자를 가진 소는 거의 멸종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양 소와의 교접이 오히려 고기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문제가 있어서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는 등의 추가 이야기는 있지만 서양소와의 교접이 당시 일본에서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파일:tane-15m.jpg]] 1903년(메이지 36년) 출판된 종우도보(種牛図譜) 중 타지마 소(但馬牛) 항목. [[http://www.city.oshu.iwate.jp/htm/ushi/03_back/200310/p04.html|출처]] 이후 1944년, 흑모화종(黒毛和種), 갈모화종(褐毛和種), 무각화종(無角和種) 3개의 품종이 구별되면서 최초로 와규(和牛)라는 품종 명칭이 붙여졌다. 이전에는 와규라는 단어가 '일본 소'를 가르키는 일반 대명사였다면 이제 와규는 흑모화종 등 3종의 소를 규정하는 품종명이 된 것이다. 1957년에는 일본단각종(日本短角種)이라는 품종이 추가되었다. 이중 2017년 기준으로 흑모화종은 일본 전체에서 159만 마리, 갈모화종은 20만 마리가 사육된다고 추산할 뿐 다른 품종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이 중 대표적인 와규인 흑모화종은 '맛좋은 소고기'를 위한 품종개량 및 교접(cross-breeding)이 워낙 많이 일어난, 일종의 [[키메라]] 같은 품종이라 유전적 기원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래와 같이 '한국 흑우 기원설'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平成24년) 2월, 일본의 와규를 인증하는 공익사단법인 '전국화우등록협회(全国和牛登録協会)'가 전국에 존재하는 [[http://www.town.mikata-kami.lg.jp/www/contents/1450768388620/files/tajimabbq.pdf|718,969마리]]의 흑모화종을 조사하여 이 중 99.9%인 718,330마리가 타지마 소인 타지리(田尻)의 유전자를 모체로 했다는 사실을 인증하였고 타지마 소의 원산지는 이를 적극적으로 [[http://www.ojirokanko.com/ojiro_mura/html/ushi.html|홍보]]에 [[https://www.sankei.com/west/news/140412/wst1404120058-n1.html|써먹고]] 있다. 따라서 별도의 추가 반론이 없는한, 오늘날 와규(흑모화종)는 '타지마 소(但馬牛)'에서 파생된 품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로 타지리(田尻)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는데, 19세기말~20세기초에 있었던 서양소와의 교접 열풍에서 타지마 소 역시 자유롭지 못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재래종으로서의 순수한 타지마소는 거의 멸종되었고 타지마 소의 대부분은 서양소와의 교접종인 '개량화종'이 이루게 된다. 그러던 중 1909년(메이지 42년) 2월 10일, 현재의 [[효고현]] 카미쵸(香美町)의 '아츠다(熱田)'라는 마을에서 타지마 소 4마리가 출생하게 된다. 이 중 한 소의 이름은 누이(ぬい)라고 하였는데 이는 상기에서 언급한 슈스케 혈통(周助蔓), 즉, 순수한 타지마 소의 혈통이라고 불려지게 된다(이를 아츠다혈통(あつた蔓)이라고 한다). 이후, 누이의 자손은 이후 계속 이어져, 1939년에는 타지리(田尻)라는 소가 출산되는데, 이 타지리라는 소는 혈통이 워낙 좋아서 다른 흑모화종의 모태가 되었으며 따라서 와규의 대표품종인 흑모화종은 일본 재래종인 타지마 소의 개량형이라는 것이 타지마 소를 홍보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타지리가 일본 재래종이라는 것은 일본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이다. 물론 1898년(메이지 31년)부터 일본 소의 호적제가 실시되었으니 누이나 타지리의 조상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1887년 서양 소가 수입된 이래 1898년까지의 공백기간동안의 서양 소 교접 광풍 속에서 타지마 소(但馬牛)의 유전적 순수성은 증명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타지마 소를 홍보하는 사람의 입장과는 달리, 누이와 타지리 역시 서양 소의 품종이 일부나마 섞였다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며 타지리의 후손격인 흑모화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파일:330px-Tajiri.jpg]] 타지리의 모우(母牛)인 후쿠에(ふくえ). 누이의 4대손이다. 그 외, 갈모화종은 한국의 [[한우]]와 유사하게 황색 털을 가졌으며, 흑모화종과 달리 비교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용이하다. 그 중, [[아소산]] 인근에 분포하였다고 해서 [[https://nbafa.or.jp/mame/syurui_katsu.html|아소 소(阿蘇牛)]]라 불리는 품종은 [[구마모토현]] 출신의 소로서, [[한반도]]로부터의 기원이 정설인 소이며 [[고치현]]계통의 갈모화종은 대부분 그 기원을 [[한반도]]에서 건너온 소와 서양 소(시멘탈 종 등)의 교잡종이라고 일본 축산업계에서도 대부분 [[http://www.akagewagyu.com/summary/category.html|인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와규의 근대적 개량은 서양 소와의 교접이 너무 활발했던 까닭에 에도시대까지 내려져오던 일본 소의 순수 혈통은 거의 사라졌으며 오늘날 확인되는 순수한 혈통의 일본 재래종은 [[야마구치현]] 미시마섬의 미시마소(見島牛)와 [[토카라 열도]]의 구치노시마 소(口之島牛) 단 2개뿐이다. 이들 소는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섬이어서 19세기후반~20세기 초반의 서양소 교접 광풍에서 비껴나갔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들 소가 순수혈통이라고 인정받은 것 역시 일본 본토에서 서양소와의 교접이 시작된 이래 40년 이상 외부와의 교류나 교접에 무심했던 섬의 역사로 증명되었다(하지만 기시 히로시(1975)를 비롯한 일련의 연구는 이를 부정한다). 그 중 미시마 소는 아래와 같이, 한국 흑우 기원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