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충주자 (문단 편집) == 제작국과 제작자에 관한 논란 == 흔히 [[백제]]와 일본의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정황, 특히 [[호류지]]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백제에서 영향을 받은 유물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 유물의 재료가 한국에서 자생하지 않은 [[히노끼]]라는 점에서 일본에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히노끼를 수입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실제로 [[무령왕릉]]의 관은 일본산 금송과 삼나무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간혹 한국이나 중국에서 제작해 보냈다는 식의 주장도 있다. 일본인이 일본에서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아스카 시대]]의 일본의 높지 않은 공예 수준을 고려하였을 때 (일본의)외국에서 온 인력([[도래인]])들이 제작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도래인의 경우 어느 나라의 도래인이냐가 문제인데, 일본에서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류지]]나 [[시텐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과 옥충주자의 건물 부분에서 공통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어 백제계 도래인이 제작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백제를 비롯한 삼국시대와 심지어는 중국의 동시대 건축물이 하나도 현존하지 않고, 호류지나 시텐노지의 경우 백제 양식과 동일하다는 확증이 없어 확실한 답이 될 수 없다. 이외에도 불궤 부분의 금속 천불 조형이나 회화에서 백제풍(예를 들면 호류지 [[몽전]]의 구세관음상처럼 길게 늘여진 옷과 인물의 수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백제의 회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그 수법이나 조형이 고구려와 유사하단 점에서 고구려인이 제작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문화 역시 [[남북조시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당시 중국 문화와의 공통점을 들어 [[양(남조)|양나라]]를 비롯한 [[남조]]의 인력이 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비단벌레 공예의 경우 과거에는 비단벌레가 일본에만 서식한다고 알려졌었지만, [[신라]]의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와 같은 유물에서도 같은 수법이 발견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도 비단벌레가 발견되면서 비단벌레만 가지고 나라를 특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외에도 각 지역의 양식이 혼재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일본에서 각 나라의 도래인들이 합작했다는 주장이나 삼국의 인력이 통합된 [[통일신라]]에서 제작했다는 주장 등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