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호십육국시대 (문단 편집) == 한국사와의 관련 == 오늘날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한반도의 [[삼국시대]]의 구도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정립된다. 후한의 붕괴-위, 촉, 오 삼국의 대립-서진의 붕괴로 이어지는 연이은 혼란은, 군현에 의해 통치되던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구려가 이 지역을 틈틈이 털기는 하였지만, 이 지역이 결정적으로 몰락했던 때가 바로 오호 십육국 시대였다. 그리고 310년대에 고구려 [[미천왕]]은 [[대방군]]과 [[낙랑군]]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고구려의 한 군현 침공 당시 백제가 대방을 돕는 과정에서, 양국은 처음으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낙랑과 대방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와 백제가 대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게 된다. 고구려 [[소수림왕]]이 [[전진]]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설립해 유교를 불교와 같이 통치이념으로 삼는다. 한편 대방과 낙랑의 몰락은, 진한 지역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본래 진한은 경주의 도시 국가 [[사로국]]을 맹주로 하는 소국 연맹체였으나, 사로국은 진한의 구조를 '금성(서라벌)'을 도읍으로 하는 영역 국가 [[신라]]로 재편시킨다. 이 재편이 완료된 것은 [[내물 마립간]]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몇 년 안 가 신라는 백제, 가야, 왜가 신라를 계속해서 침공해 오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구원으로 [[장수왕]] 때까지 고구려의 내정간섭을 받는다. [[마립간]] 문서에서 보듯이, [[이사금]](연장자)이 군장 사회의 우두머리에 알맞은 칭호인 반면에 [[마립간]](간干들의 우두머리)은 영역 국가의 군주에 어울리는 칭호다. 그리고 마립간 시기에 영역 국가로 전환한 신라는, 기존과는 달리 한 씨족(김씨)이 독점적으로 군주를 배출하는 본격적인 [[왕조국가]]로 발전한다. 그리고 변한 지역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중원의 혼란과 낙랑 및 대방의 몰락은 그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부를 축적하던 [[가야]]에 경제적 타격을 준다. 즉 이 시기에 낙랑 및 대방에서 중국 군현이 사라지고, 고구려와 백제가 처음으로 직접적인 군사적 대립을 하게 되고, 도시 국가 [[사로국]]이 영역국가 [[신라]]로 전환하고, 가야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경우, 북중국의 왕조들과 충돌하였다. 선비족의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이 강성해짐에 따라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어머니와 부인을 볼모로 내주고 아버지인 [[미천왕]]의 능이 파헤쳐지며 수도였던 환도산성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간신히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前秦)]]이 이들을 병합하면서 살 만하자 앞서 언급했듯 대방 및 낙랑 지역에서 남쪽의 [[백제]]와 충돌했는데 당시 백제의 태자였던 [[근구수왕]]에게 역관광을 겪더니, 끝내 평양에서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모용선비의 연나라 계열 국가들은 오호십육국 초기, 다른 민족보다 중국의 문화를 깊게 받아들인 나라였고, 이 힘을 바탕으로 화북의 패권을 쥘 수 있었다. 이 힘에 참패함으로써 중국 문명의 선진성을 깨달은 고구려는 불교, 율령, 유교 등 중국 문화 수용에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북연을 부수며 중국 문화 수용의 선진성을 또 한 번 입증하게 된다. 이 고구려의 성공을 시작으로 동북아 각국에서 중화 문명 수용에 열을 올리게 된다. 얼마 뒤 전진이 붕괴하자 다시 [[후연]]이 나타났으나 이번엔 복수혈전을 다짐한 [[광개토대왕]]에게 발려버리고, 이후 요동을 완벽하게 장악한 고구려는 강성해지면서 [[남북조시대]] 내내 그 세력을 떨친다. 이때 [[신라]] 사신이 고구려 사신과 같이 방문하고 왔다. 한국의 삼국시대를 연구하려면 이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 개판이었던 중국 북부 상황 때문에 상당히 많은 유민들의 이민(양쯔강 이남 개발이 본격화 된다.)이 있었고, 육로로 연결된 한국에도 많은 유민들이 때로는 침략의 형태로 때로는 이민의 형태로 넘어왔다. 그래서 한국의 [[역덕후]]라면 이 복잡한 시대도 알고 들어가야 한다. 한편 최근 서양과 중국의 역사학계가 이 시대 연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한국사]]와의 연결 고리인 당대 [[고구려]]와 [[삼국시대]]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길 희망하는 학도들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