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오호십육국시대 (문단 편집) == 평가 == 중국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혼란기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자치통감]]》이나 《[[진서]]》를 읽으면 좋다. 정말 많은 [[영웅]]들과 많이도 세워진 [[국가#s-1|국가]]들, 그리고 넘쳐나는 [[막장]] 군주들이 있던 파란만장한 난세였다.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처럼 잦은 [[전쟁]]으로 중원의 인구가 많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종족들이 강제 이주도 겪었다. 이게 다 서진 시대의 [[팔왕의 난]] 탓이다. 기껏 통일하고서 일어난 내분으로 [[영가의 난]]으로 대표되는 유목민족의 침입과 민족 대이동, 막장스런 내정 때문에 중국은 [[수나라]](隋)가 성립한 뒤에야 다시 통일 왕조를 이뤘다. 물론 이것도 잠시뿐이었고, 수·당 교체기의 군벌 할거가 또 있어서 진정한 평화는 당나라 때였다. 이 당시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운데다가 하필이면 이 앞 시대가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대이다 보니 과거 삼국지를 모르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던 시절에도 오호십육국시대를 모른다고 쓴소리를 듣진 않았으며, 애초에 그 삼국지도 제갈량의 [[오장원]] 까지만을 읽고 그 이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 한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 아니다. 20년대로 들어서 삼국지 조차도 잊혀지는 시대에 이 시대가 가지는 비중을 생각하면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이 시대를 잘 모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고, 중국도 그렇다. 이 시대는 서술해봐야 설명하기도 까다롭고, 전투수준도 약탈전과 방어전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굳이 상세하게 서술할 이유가 없으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가 중국 역사에서 가지는 중요성이 상당하다. 왜냐하면 과거 후한 시대부터 이민족들은 꾸준히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었고, 서진 시대에 이르면 "관중 인구 절반은 이민족"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실 한나라 시대부터 한족과 중화 사상의 원형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바로 중국 대륙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한족이라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족들도 자국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한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혈통 문제만이 아니라 언어적 문제 같은 점들도 있었다. 사실 명나라 시기까지 북족 같은 소수 민족들도 기록에서 확인이 된다. 명나라 시대에 사천과 운남 지방을 한족화하기 위하여 인구를 이주시키기도 했다. 한나라 시대에 정복된 남방 영토나 이전 시대의 초나라만 봐도 월계 민족이나 묘족들이 상당히 있었고 한족의 개조라 할 수 있는 한 고조 [[한고제|유방]]도 초나라에서 출발한 집단 중 하나로 한나라를 세우고 한족의 근원이 되었음을 사서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유방의 선조는 본래 진(秦)과 위(魏)의 국경 근처에 살았으며 유방의 고향인 패국도 사수 일대로 장강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초나라는 남방의 비한족계 민족 국가였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당시 장강 이남은 밀림으로 뒤덮인 다양한 민족들의 영역이었고, 고고학적 연구 결과 초나라의 유적이나 유물들은 초나라가 묘족의 나라로 출발하였음을 반증하고 있다. 물론 신화시대까지 가면 고대 중국 국가들을 민족, 혈통적으로도 연결을 할 수도 있으나 신화시대 이야기는 고대 중국의 학자들도 사실이라 믿지 않았다. 사마천도 삼황의 존재를 허구로 단정했다. 한족이나 중화 사상도 혈통적 집합이라기보다 문물이나 문화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중화를 받아들이고 기준만 맞으면 한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화북 지방이 더 혼란했지만, 이 시기만 하더라도 강남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는 단계에 불과했던지라 국력은 남조 쪽이 열세였다. 생산력과 인구가 평균적으로 2배 이상 화북 지방이 높거나 많았기 때문에 북조가 남조보다 더 우월했고, 이 밑천은 [[수나라|북조인 수나라]]가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존의 역사학 연구에서는 이 시대의 유목민 왕조들을 [[원나라|원]]·[[청나라|청]] 같은 정복 왕조들과 구분하는 뜻에서 '''침투 왕조'''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중국[* 지리적으로는 중원, 민족적으로는 한족] 체제를 바꾸기보다는 거기에 침투하여 흡수되었다는 의미로, 기존의 체제에 의존하고 독자적인 체제를 세우지 못했다는 용어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들 유목민 왕조들도 후대의 [[수나라|수]]나 [[당나라|당]] 같은 세계제국이 성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호한체제론'''(胡漢體制論)[* 남조의 역사를 상대적으로 도외시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학교 박한제 교수가 주창한 이 이론은 한국 역사학계가 세계 역사학계에 기여한 사실상 유일한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