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타쿠/비판 (문단 편집) == 배경 == 1990년대 중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이란 한국 애니메이션과 정식 방영된 소수[* 여기서 소수라 함은 국내에서의 비율이 아니라 전체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한국에 들어온 비율을 의미한다.]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더욱 소수인 기타 국가 애니메이션 뿐이었다. 따라서 이들 이외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소식을 접할수 있는 창구는 신문 및 지상파 뉴스 문화면의 단신이나 특집기사 같은 것이 전부였다. 1990년대 초중반 일본의 BS, 중국의 STAR TV 등 외국어 방송을 통해 접한 팬들이 그 내용을 PC통신으로 공유하면서 매니아 층은 형성되었으나 여전히 일본 애니에 관심을 가진 팬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일본 아동급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한국 성우의 육성녹음을 입혀서 방송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이전까지 그 당시에 활동했던 일본 성우에 대해서 대부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후지와라 케이지]]나 [[이노우에 키쿠코]]도 90년대에 활동했던 성우들이지만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이나 2010년대에 온라인을 통해서 뒤늦게 알려졌을 정도이다.] 그러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기점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정식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에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또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대한민국 역대 독재자들이 영상 문화를 -그중에서도 해당 장르를- 철저히 통제한게 30여년이었기 때문에]] 아래의 비판거리도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모든게 질식됐고 그게 해빙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 즉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체재가 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였고, 다른 분야의 팬덤과는 달리 건전한 팬덤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 결과, 대중들에게 정말로 덕질 외에는 아무 생각 없는 골빈 애들이었다는 것을 확인사살 해주면서 이들은 이 문서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